원시림 경험, 평창 두타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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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산객들이 드물어서일까, 들머리에 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다.
오지의 산이 대개 그러하다.
봉산천을 건너 박지골 계곡으로 들어섰다.
축축하고 눅눅하다.
이끼가 자생하기에 그만인 조건이다.
고목 밑동에, 계곡 바위에 이끼가 지천이다. 이랬던 이끼계곡이….(빌려온 사진)
비경을 담는 포토그래퍼들이 박지골의 바위이끼를 최고로 친다.
그만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6년 수해로 이끼 계곡이 많이 망가져 버렸다.
더디게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 중이다. 이정표가 없어 길 찾기가 쉽지 않다. 흔한 리본 표식도 보이지 않는다.
등산지도 보며 나뭇가지를 헤쳐가며 感으로 나아갔다.
숲이 깊다. 원시림 그대로의 모습에 가깝다.
2009년 12월, 호랑이가 나타났다 하여 떠들썩 한 적 있었다.
바로 이곳 박지골이다. 믿기지 않았으나 산세가 깊어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음습한 골짜기에서 일순 냉기운이 감돈다.
냉기의 원천은 이끼낀 바위 틈이다.
틈새로 손을 넣어 봤다. 차디차다.
박지골에선 말복까지 얼음을 볼 수 있다고 들었다.
고개를 들이밀어 바위틈을 살폈으나 얼음은 없다. 한시간 반쯤 걸었을까,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임도가 나타났다.
아차골에서 모리재까지 연결되는 임도다.
등로 안내 팻말은 여전히 없다.
임도 건너 산비탈에 리본 표식이 있어 다행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숲 속으로 들었더니 너덜길과 된비알이 반갑잖게 맞는다.
모자챙을 타고 흐른 땀이 신발코를 흥건하게 적셨다.
그렇게 40여분 정도를 빡세게 올라 능선 갈림길에 닿았다.
역시나 안내 팻말은 없다. 지도를 펼쳤다. 절터와 아차골 갈림길이다.
등고선을 살펴보니 이곳에서 정상까진 완만한 편이다. 일행들은 산나물이 지천이라며 곰취, 당귀잎 채취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정작 한아름 뜯어 온 게 산나물이 아니라는,
자칭 산나물 감정사의 한마디에 적잖이 실망하기도. 정상에 이르자, 키를 낮춘 나무들 사이로 이정표가 보였다.
이정표는 봉산재(3.2km), 절터(5.3km), 수항(5.7km) 방면을 가리킨다.
여태껏 산 오르내리며 이정표가 반갑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좁은 봉우리엔 돌탑과 서로 다른 두개의 정상표시석이 세워져 있다. 두타산(해발 1,394m)과 박지산(해발 1,391m).
원래 산이름이 두타산(頭陀山)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삼척의 두타산과 혼동된다 하여 박지산으로 개명했다.
그렇게 쭈욱 박지산으로 불리어지다가 ‘우리 산 이름 바로 찾기 운동’으로
2002년에 이르러 비로소 제이름을 찾았다.
그런데도 산꾼들 사이에선 여전히 박지산으로 통한다.
백두대간 상의 삼척 두타산(1,357m) 보다 37m나 더 높은데…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좋다.
발왕산과 노추산, 백석산과 잠두산 등 강원 산군이 시야에 가득 든다.
일망무제를 뒤로하고 수항(5.7km) 방면으로 내려선다.
일행들의 걸음이 더디다.
산나물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등로를 이탈해
산나물 찾아 숲속을 헤매느라 그렇다. 정상에서 1.3km를 내려서면 안부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서 능선을 따라 곧장 진행하면 단임산, 우측으로 틀면
날머리로 잡은 두타산자연휴양림 방향이다.
안부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서늘한 숲길이 아차골로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800m를 내려오자, 다시 임도와 맞닥뜨린다.
이정표는 임도를 따라 걸으라 가리킨다.
임도를 따라 걸으려면 따가운 햇볕을 감내해야 한다.
그럴순 없다. 그늘진 숲길을 찾아야 한다.
임도변 숲을 헤쳐 희미한 길을 어렵사리 찾아냈다. 숲길은 끊어졌다 이어지길 거듭했다.
길을 가로막고 드러누운 고사목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수해로 인한 생채기들이다.
이정표가 가리키는대로 임도를 따라 걸었더라면 생고생을
발길 흔적이 지워진 깊은 계곡은 서늘했다.
물소리를 따라 내려가 신발을 벗어 계류에 발을 담갔다.
아~차~! 소리가 절로 새어 나올만큼 정말 차다.
그래서 ‘아차골’이라니, 골짜기 이름 한번 제대로다.
올여름 더위피난, 평창 두타산을 찾아 차디찬 아~차~골을 경험해 보시길! 신기리-박지골-임도-두타산(박지산)-안부-갈림길-아차골-임도-두타산휴양림
오지의 산이 대개 그러하다.
봉산천을 건너 박지골 계곡으로 들어섰다.
축축하고 눅눅하다.
이끼가 자생하기에 그만인 조건이다.
고목 밑동에, 계곡 바위에 이끼가 지천이다. 이랬던 이끼계곡이….(빌려온 사진)
비경을 담는 포토그래퍼들이 박지골의 바위이끼를 최고로 친다.
그만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6년 수해로 이끼 계곡이 많이 망가져 버렸다.
더디게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 중이다. 이정표가 없어 길 찾기가 쉽지 않다. 흔한 리본 표식도 보이지 않는다.
등산지도 보며 나뭇가지를 헤쳐가며 感으로 나아갔다.
숲이 깊다. 원시림 그대로의 모습에 가깝다.
2009년 12월, 호랑이가 나타났다 하여 떠들썩 한 적 있었다.
바로 이곳 박지골이다. 믿기지 않았으나 산세가 깊어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음습한 골짜기에서 일순 냉기운이 감돈다.
냉기의 원천은 이끼낀 바위 틈이다.
틈새로 손을 넣어 봤다. 차디차다.
박지골에선 말복까지 얼음을 볼 수 있다고 들었다.
고개를 들이밀어 바위틈을 살폈으나 얼음은 없다. 한시간 반쯤 걸었을까,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임도가 나타났다.
아차골에서 모리재까지 연결되는 임도다.
등로 안내 팻말은 여전히 없다.
임도 건너 산비탈에 리본 표식이 있어 다행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숲 속으로 들었더니 너덜길과 된비알이 반갑잖게 맞는다.
모자챙을 타고 흐른 땀이 신발코를 흥건하게 적셨다.
그렇게 40여분 정도를 빡세게 올라 능선 갈림길에 닿았다.
역시나 안내 팻말은 없다. 지도를 펼쳤다. 절터와 아차골 갈림길이다.
등고선을 살펴보니 이곳에서 정상까진 완만한 편이다. 일행들은 산나물이 지천이라며 곰취, 당귀잎 채취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정작 한아름 뜯어 온 게 산나물이 아니라는,
자칭 산나물 감정사의 한마디에 적잖이 실망하기도. 정상에 이르자, 키를 낮춘 나무들 사이로 이정표가 보였다.
이정표는 봉산재(3.2km), 절터(5.3km), 수항(5.7km) 방면을 가리킨다.
여태껏 산 오르내리며 이정표가 반갑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좁은 봉우리엔 돌탑과 서로 다른 두개의 정상표시석이 세워져 있다. 두타산(해발 1,394m)과 박지산(해발 1,391m).
원래 산이름이 두타산(頭陀山)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삼척의 두타산과 혼동된다 하여 박지산으로 개명했다.
그렇게 쭈욱 박지산으로 불리어지다가 ‘우리 산 이름 바로 찾기 운동’으로
2002년에 이르러 비로소 제이름을 찾았다.
그런데도 산꾼들 사이에선 여전히 박지산으로 통한다.
백두대간 상의 삼척 두타산(1,357m) 보다 37m나 더 높은데…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좋다.
발왕산과 노추산, 백석산과 잠두산 등 강원 산군이 시야에 가득 든다.
일망무제를 뒤로하고 수항(5.7km) 방면으로 내려선다.
일행들의 걸음이 더디다.
산나물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등로를 이탈해
산나물 찾아 숲속을 헤매느라 그렇다. 정상에서 1.3km를 내려서면 안부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서 능선을 따라 곧장 진행하면 단임산, 우측으로 틀면
날머리로 잡은 두타산자연휴양림 방향이다.
안부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서늘한 숲길이 아차골로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800m를 내려오자, 다시 임도와 맞닥뜨린다.
이정표는 임도를 따라 걸으라 가리킨다.
임도를 따라 걸으려면 따가운 햇볕을 감내해야 한다.
그럴순 없다. 그늘진 숲길을 찾아야 한다.
임도변 숲을 헤쳐 희미한 길을 어렵사리 찾아냈다. 숲길은 끊어졌다 이어지길 거듭했다.
길을 가로막고 드러누운 고사목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수해로 인한 생채기들이다.
이정표가 가리키는대로 임도를 따라 걸었더라면 생고생을
발길 흔적이 지워진 깊은 계곡은 서늘했다.
물소리를 따라 내려가 신발을 벗어 계류에 발을 담갔다.
아~차~! 소리가 절로 새어 나올만큼 정말 차다.
그래서 ‘아차골’이라니, 골짜기 이름 한번 제대로다.
올여름 더위피난, 평창 두타산을 찾아 차디찬 아~차~골을 경험해 보시길! 신기리-박지골-임도-두타산(박지산)-안부-갈림길-아차골-임도-두타산휴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