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방문한 환자가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다. 며칠 동안 끙끙 앓은 절박한 감기에 대한 하소연에 대해 의사가 들어주는 시간은 고작 3분이 되지 않는다. 디지털 장비로 무장된 철저한 병원 시스템 덕분에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환자들이 거의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다. 은행에서도 예금 입출금이나 공과금 수납을 사람이 아닌 디지털 기계가 더 많이 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도 교통카드를 들고 사람들과의 한마디 대화 없이 얼마든지 오르내릴 수 있다. 인터넷 세상은 한 평 자리를 뜨지 않더라도 모든 일을 그 자리에서 처리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처럼 디지털 세상은 우리에게 상당 부분 편리함을 제공 하고 있다. 그러나 빠르고 정확하고 편리해서 좋긴 한대 한편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이다. 바로 아날로그식의 인간적인 부분이 점점 약화되는 것 같아서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디지털 시대, 디지털 방식이 꼭 요술방망이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디지털 방식에만 길들여지고 익숙해질수록 어느 순간 아날로그의 인간적인 풋풋한 향수에 젖어들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동네 약국과 은행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나 자신을 기억하고 반갑게 맞이해 주던 약사, 은행직원 그리고 함께 이야기하던 버스기사 아저씨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전산화된 컴퓨터와 카드 단말기로 일사불란하게 계산을 하고 고객정보를 입력하는 모습보다 수첩에 직접 단골 고객의 명단을 적고 현금을 받아 고마운 표정으로 확인해보는 어느 가게 주인의 수고로움에 더 정성과 친근감을 느낀다.

이제 와서 추억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돌이키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업무환경과 여건 등은 디지털 방식으로 얼마든지 변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인 부문만큼은 아날로그방식을 준수 했으면 한다. 그래야 안 그래도 갈수록 삭막해져가는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
어느 물류회사의 직원은 컴퓨터가 고장 나면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중요한 발표를 할 때 노트북에 있는 파일이 열리지 않으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고 인터넷이 없으면 정보검색을 할 수 없어 쩔쩔 매는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미가 없는 디지털 맹신도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직접 재고 관리도 해보고 컴퓨터가 아닌 출력물을 보고도 발표할 수 있어야 하며 전화나 서적 등을 통해서도 중요한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디지털을 너무 맹신하면 디지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 디지털시스템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소위 ‘디지털 치매’에 걸리고 만다. 휴대폰 전화번호 데이터가 날라 가면 외우질 않아서 아무데도 전화를 하지 못하고, 내비게이션이 멈추면 길을 찾지 못해 자동차를 멈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 디지털 방식과 아날로그 방식은 상호 보완 관계를 형성해야 바람직하다. 디지털은 논리적이고 치밀한 이성을 가지고 있고 아날로그는 따뜻한 인간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적절하게 퓨전(조합)할 때 매우 큰 효과를 볼 수가 있다. 둘이 지닌 장점을 잘 버무려 섞어찌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날로그를 배제하면 인간미가 없어질 수 있으니 아날로그도 당분간은 당당하게 디지털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디지로그(Digilog=Digital+Analog)’라는 말도 생겨났다.

우리의 제반 일하는 스타일도 ‘디지로그’로 바꾸어 보자. 첨단 장비는 디지털을 고수하더라도 사람들과의 정감어린 대화, 성의 있는 태도, 유연한 생활방식 등은 아날로그의 장점을 살리도록 하자. 그렇게 해야 조직이 발전하고 모든 게 원만하게 잘 돌아간다.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하다가도 꽁보리밥이 생각나게 마련이다.

미래의 우리사회는 더더욱 인스턴트 식품처럼 간편한 첨단과학의 디지털 시스템으로 무장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끔 꽁보리밥을 즐겨 찾는 아날로그의 인간적인 맛(?)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하자.
디지털만을 맹신하다가는 큰코다친다. 아날로그 홀대하지 마라.
아직도 아날로그는 건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