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를 건너서면 산길은 범륜사로 통하는 도로와 접한다. 도로가 가파르긴 하나 범륜사까진 차가 다닐 수 있다. 원래 감악산에는 4개의 사찰(감악사, 운계사, 법륜사, 운림사)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모두 소실되었고 1970년 옛 운계사 터에 재 창건한 절이 지금의 범륜사다. 범륜사를 왼쪽에 두고 오르면 다시 산길이 시작된다. 타박타박 걷기좋은 흙길은 잠깐, 슬슬 길은 본색을 드러냈다. 돌멩이가 불규칙하게 박혀 있는 너덜길로 들어섰다.숯가마터를 지나 세갈래길 잣나무 쉼터에 서서 진행 방향을 살폈다. 오른쪽 지능선을 타고 임꺽정봉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를 택했다. 20분 정도 빡세게 치고 오르니 산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능선이다. 소나무 사이로 드러난 산야가 흐릿하다. 여기서부터 감악산의 백미인 암릉길이 장군봉을 거쳐 임꺽정봉까지 이어진다. 산아래로 신암저수지와 부도골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우측 발아래는 현기증이 일 정도로 바위직벽이 아찔하다. 640m 암봉을 밟고서면 임꺽정봉이 정면에 우뚝하고 감악산 정상, 그리고 북으로 까치봉 능선도 시야에 잡힌다. 640암봉을 내려서면 부도골재 안부 사거리, 다시 오른쪽 암릉길을 따라 오르면 임꺽정봉 정상이다. 맑은 날이라면 개성 송악산, 마석 천마산, 양주 불곡산까지, 임꺽정의 주무대가 한 눈에 조망된다는데…아쉽다. 의롭지 못한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힘없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들을 응징한 의로운 도적, 임꺽정은 어쩌면 조선시대 최고의 산꾼이 아니었을까?
이곳 감악산에도 임꺽정봉이 있고 벼랑 아래 바위틈에 임꺽정바위굴도 있다. 임꺽정봉은 양주 불곡산에도 있고 마석 천마산에도 임꺽정바위굴이 있다. 구렛나루와 턱수염이 무성한 산적 모습으로 험준한 산봉을 거침없이 누비고 다녔을 그를 내 맘대로 상상해 본다. 임꺽정봉에서 내려서면 임꺽정굴(‘설인귀굴’이라고도)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있다. 서너걸음만 뒤로 물러서면 천길 낭떠러지인지라 미처 굴을 확인치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조심스레 한발 내려서니 바위 틈새로 굴 안이 들여다 보인다. 입구는 매우 좁으나 그 깊이는 아찔하다. 임꺽정굴에서 감악산 정상까지는 400여 미터 남짓. 안부 갈림길을 지나자 이내 감악산 정상(675m)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상에는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고비(古碑)가 우두커니 서 있다. 화강암 석비로 높이 170cm, 너비 78cm의 규모이다. 문자가 마멸되어 고증할 수 없어 ‘몰자비(沒字碑)’라 부르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이 비의 양식이나 건립 추정연대, 지형적 조건 등으로 보아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로 추정하고 있다. 고비(古碑) 옆에 우뚝 선 철탑과 북사면에 설치된 군부대 철조망이 여엉~ 눈엣가시다.
까치봉 저 너머로 임진강 물줄기가 흐릿하게 눈에 든다. 이 물줄기는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의 한을 가득 싣고서 한탄강과 어우러지고 파주를 가로질러 한강을 만나 서해로 실뱀처럼 흘러든다. 하산은 정상 아래 팔각정을 지나 까치봉을 거쳐 운계능선, 그리고 범륜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택했다. 암릉길과 숲길이 조화로운 감악산은 화악산, 관악산, 운악산, 그리고 개성 송악산과 함께 경기 오악으로 이름값을 하며 한국 100대 명산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운계능선길은 고즈넉한 숲길이다. 푹신한 흙길이라 발바닥에 닿는 감촉도 좋다. 간간이 두팔 벌려 깊게 호흡하며 유유자적 걷기에 그만이다. 묵은밭 갈림길을 지나 운계능선 끝지점에 이르면 손마중길과 합쳐진다. 이정표는 오른쪽은 선고개, 왼쪽은 운계전망대와 범륜사를 가리킨다. 범륜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록이 짙어가는 숲에 취해벗어나기가 아쉬운데 어느새 범륜사 입구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