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서울 도심은 여전히 아팠습니다.
촛불과 태극기 대열이 맞섰습니다.
몸도 마음도 추웠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시린 마음을 데우러
동네 재래시장 순대국집을 찾았습니다.
벽걸이 티비 화면 속에도 촛불 그리고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술국을 시켜 소주 한 병을 비웠습니다.

복잡한 머릿 속을 털어내기엔 술잔 보단 산이 낫지요.
내일은 어느 산으로 들까? 수도권 산들을 떠올렸습니다.

중앙선을 타고 떠나는 힐링산행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낙점한 한 곳이 양평 추읍산입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이른 아침,
부지런을 떨며 배낭을 챙겨 메고서 상봉역으로 달려갔습니다.
날씨가 쌀쌀한데도 승강장엔 여전히 산꾼들로 북적입니다.
중앙선 전철을 타고 원덕역(추읍산)에 이르는 동안, 산꾼들은
물이 새어 나가듯 예봉산, 운길산, 부용산, 청계산으로
빠져 나가고 원덕역에 내린 산꾼들은 고작 너댓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추읍산은 인근 용문산이나 중원산에 가려져 있어
아직까지도 산꾼들 발길이 뜸한 곳이라 호젓한 산길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습니다.
역마당에 서서 올려다 본 코발트빛 하늘이 유난히 차게 느껴집니다.
희뿌연 서울의 하늘과 극명하게 대비 되네요.

역마당에서 왼쪽 길로 200여 미터 진행하다가, 오른쪽 비닐하우스
농장 사잇길을 가로지르면 신내천 둑길이 나오고 다시 신내천을
가로질러 놓인 나지막한 교각을 건너 곧장 왼쪽 천변 길로
접어들면 추읍산 산자락에 올라붙습니다.

산길은 초입에서부터 고개를 바짝 쳐듭니다.
응달진 산비탈은 토사와 낙엽이 엉켜 얼어붙어 미끄럽습니다.

산길은 한 기의 무덤을 지나면서 더욱 까칠하게 치고 오릅니다.
가쁜 숨을 토해가며 조금씩 고도를 높입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분기점까지 산비탈은 매우 가팔라
미끄럽지만 지그재그로 길이 나 있고 군데군데 밧줄도 걸려 있어
아이젠 없이 올랐으나 내려설 땐 반드시 아이젠을
걸어야 할 구간입니다.
능선 분기점 이정표는 정상이 우측 170m 거리에 있음을 가리킵니다.
헬기장을 지나 추읍산 정상(583m)에 섰습니다.
밥주걱 모양을 닮은 정상표시석이 구면인 산객을 무심히 대합니다.
용문산을 향해 엎드려 ‘읍(揖)’하는 모양새라 하여
‘추읍산(趨揖山)’이라지요.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여 일상에서의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몇해 전 여름에도, 다시찾은 오늘도, 여전히 호젓한 산길입니다.
어쩌다 산객 한둘 만날 정도로 인적이 드뭅니다.
내려올 땐 역시나 미끄러워 신발에 아이젠을 걸어야 했습니다.
신발엔 낙엽과 흙이 엉켜붙어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겁습니다.
산길을 내려와 비닐하우스가 늘어선 들판을 가로질러 원곡역으로
원점회귀한 거리는 10.4km, 허기가 밀려왔지만 원곡역 앞엔
흔한 짜장면집 하나 눈에 띄질 않습니다.

한참을 더 걸어 마을에 들어서니 조그만 슈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발면에 막걸리 한사발로 출출함을 달랬습니다.
가게 안에선 동네 어르신 몇 분이서 민화투에 열중이십니다.
어르신들이 나누는 세상 이야기를 귀동냥 했지요.
구수한 이야기가 난로불만큼이나 따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