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지붕, 연석산과 운장산을 이어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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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번쩍~우르르쿵쾅~ 하더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연동마을에 이르는 동안 억수같은 비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식당 앞 평상에 걸터앉아 청국장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서 척척한 몰골로 버스에 올랐다. 2008년 삼복염천에 운장산과 연석산을 이어 걸어
연동마을로 하산하던 때의 기억입니다.
그 연동마을을 지난 2월 셋째주 일요일, 8년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그땐 내처사동을 들머리로 운장산, 연석산 거쳐 연동마을로 내려왔고,
이번엔 逆으로 연동마을을 들머리로, 연석산과 운장산을 오르기 위해서입니다. 도로 옆 너른 주차장에 빙 둘러 서서 스트레칭을 한 후…출발!
연동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물소리가 맑게 들립니다.
봄이 멀지않았다는 신호인게지요.
연석산 계류는 대아호를 거쳐 만경강으로 흘러듭니다. 물소리가 잦아들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솟구칩니다.
푹 눌러 쓴 비니를 말아 올려 귀를 드러내고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었습니다.
눈이 비로 바뀐다는 ‘우수’가 지난 터라 요며칠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도 맥을 못추네요. 날씨가 푹해졌습니다.
갈림길 이정표가 보입니다. 연석산 정상까지 1.4km를 가리킵니다.
그새 들머리에서 2.3km를 걸어 온 것입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오릅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응달진 산자락엔 잔설이 듬성등성 보입니다.
된비알길 낙엽 밑에 숨은 얼음은 客의 방심을 호시탐탐 노리네요. 연석산 정상(925m)에 섰습니다.
벼루(硯)를 만드는 돌(石)이 많이 난다고 하여 연석산(硯石山)이랍니다.
산정엔 그 흔한 정상표시석 조차 세워져 있지 않네요.
이곳에 많다는 硯石에 산이름을 새겨 세워 놓으면
그 의미가 더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넷 에움이 탁 트여 조망은 더없이 장쾌한 연석산 정상이지만
건너 운장산의 위용에 주눅이 들었는지 누더기 표지판만이
휑한 산정을 뻘쭘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운장산으로 이어진 능선길이 한 눈에 쏙 들어옵니다.
능선길이 유순해 보이나 아마도 곳곳에 난관이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곧잘 산을 일러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하지요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닥치면 방법이 생깁니다. 연석산 봉우리에서 15분 정도 내려서면 만항치입니다.
정수궁 마을로 내려서는 길림길이기도 하지요.
만항치에서 서봉까지는 고도를 300미터나 급격히 올려야 합니다.
눈이 얼어붙은 산죽 사잇길이 매우 미끄럽습니다.
웃자란 산죽 탓에 볕이 파고 들지 못해서입니다.
연석산 운장산엔 유독 산죽이 무성합니다.
산죽은 땅속 줄기로 빠르게 번식하면서 주변 다른 식물의 영양분을
빼앗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 식물로 푸대접을 받지요. 서봉이 가까와질수록 산길은 점점 거친 구간이 잦습니다.
로프에 매달려야 하는 바위벼랑도 불쑥 불쑥 나타나고요.
하늘에서 눈발이 아주 조금씩 흩날립니다.
군데군데 짙은 구름이 떠다니나, ‘맑음’이 우세합니다. 바짝 다가선 서봉(1,123m) 정수리 위로 먹구름이 허허로이 지납니다.
서봉의 바위벼랑은 운장산 三連峰 중 단연 돋보입니다.
암봉에 덩그러니 올라앉은 빈 벤치에 눈이 갑니다.
등받이가 날아간 벤치 모습은 8년 전에 본 그대로입니다.
“벤치는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그렇습니다.
등받이가 날아간 허접한 벤치는 8년 전에 본 그대로인데
소생의 다리심은 8년 전에 비해 뚝 떨어져버렸으니… 서봉(칠성대 1,120m)에 올라서서, 지나온 연석산을 굽어봅니다.
가야할 중봉 그리고 동봉도 건너다 봅니다. 휴우~
서봉은 북두칠성의 전설이 숨어 있어 ‘칠성대’로도 불리지요. 이정표가 가리키는 저 길의 끝은 또 어디로 이어질까요?
길은 그렇게 멈춤 없이 세상 어딘가로 이어집니다. 바위벼랑에 얼기설기 이어놓은 쇠파이프 난간을 잡아가며
서봉을 내려와 중봉(운장대 1,126m)으로 향합니다.
이 산은 19세기 중엽까지 ‘주줄산’으로 불려졌으나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운장 송익필이 이 산중에 은거한 이후 산 이름이
그의 號, ‘雲長’으로 바꿔졌다고 전합니다.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을 경계짓는 운장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포함될만큼 능선이 장쾌합니다. 금남정맥 줄기에서 가장 높은 운장산 중봉(운장대 1126m)에 섰습니다.
주변 산군들이 키를 낮춘 듯 둘러봐도 견줄 만한 봉우리가 없습니다.
남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동으로 덕유산 줄기가, 북으로 대둔산과
서대산이 파노라마처럼 아스라이 너울댑니다.
장쾌한 산군의 실루엣이 멋진 스카이라인을 선사하네요. 다시 동봉(삼장봉)으로 발길을 서두릅니다.
아이젠 차기를 귀찮아 하는 몇몇 ‘귀차니스트’들이 얼어붙은
응달진 비탈길을 무모하게 진행해 보지만 어림없습니다.
두어번 씩 나뒹군 후에야 객적은 표정으로 궁시렁대며
주섬주섬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더군요.
‘안전산행’,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위 사진은 현재의 모습. 아래 사진은 정상석이 사라지기 전 모습 이처럼 미끄럽고 가파른 길을 버벅대며 통과했건만 정작 동봉에 이르러
지나온 중봉과 서봉을 건너다보니 소잔등처럼 유순하기만 합니다.
정상 표시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박혀있던 자리만 뻐끔합니다.
굴러 떨어졌나?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네요. 산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면서 찬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납니다.
하산을 서두르라는 시그널입니다.
이제 날머리인 내처사동까지 2.8km는 줄곧 내리막입니다.
급비탈이라 산길은 지그재그로 나 있습니다.
얼어붙어 까칠한 된비알이 녹록치 않았지만 그지없이 즐거웠습니다.
두더지처럼 산죽을 헤쳐가며 걸어도 절로 신바람이 났습니다.
꼬질꼬질해진 밧줄에 매달려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첩첩이 이어지는 山群을 조망하며, 그렇게 늦겨울의 산을 만끽했습니다. 연동마을->연석사->연석산->만항치->서봉(칠성대)->중봉(운장대)->동봉(삼장봉)->내처사동
연동마을에 이르는 동안 억수같은 비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식당 앞 평상에 걸터앉아 청국장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서 척척한 몰골로 버스에 올랐다. 2008년 삼복염천에 운장산과 연석산을 이어 걸어
연동마을로 하산하던 때의 기억입니다.
그 연동마을을 지난 2월 셋째주 일요일, 8년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그땐 내처사동을 들머리로 운장산, 연석산 거쳐 연동마을로 내려왔고,
이번엔 逆으로 연동마을을 들머리로, 연석산과 운장산을 오르기 위해서입니다. 도로 옆 너른 주차장에 빙 둘러 서서 스트레칭을 한 후…출발!
연동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물소리가 맑게 들립니다.
봄이 멀지않았다는 신호인게지요.
연석산 계류는 대아호를 거쳐 만경강으로 흘러듭니다. 물소리가 잦아들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솟구칩니다.
푹 눌러 쓴 비니를 말아 올려 귀를 드러내고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었습니다.
눈이 비로 바뀐다는 ‘우수’가 지난 터라 요며칠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도 맥을 못추네요. 날씨가 푹해졌습니다.
갈림길 이정표가 보입니다. 연석산 정상까지 1.4km를 가리킵니다.
그새 들머리에서 2.3km를 걸어 온 것입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오릅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응달진 산자락엔 잔설이 듬성등성 보입니다.
된비알길 낙엽 밑에 숨은 얼음은 客의 방심을 호시탐탐 노리네요. 연석산 정상(925m)에 섰습니다.
벼루(硯)를 만드는 돌(石)이 많이 난다고 하여 연석산(硯石山)이랍니다.
산정엔 그 흔한 정상표시석 조차 세워져 있지 않네요.
이곳에 많다는 硯石에 산이름을 새겨 세워 놓으면
그 의미가 더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넷 에움이 탁 트여 조망은 더없이 장쾌한 연석산 정상이지만
건너 운장산의 위용에 주눅이 들었는지 누더기 표지판만이
휑한 산정을 뻘쭘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운장산으로 이어진 능선길이 한 눈에 쏙 들어옵니다.
능선길이 유순해 보이나 아마도 곳곳에 난관이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곧잘 산을 일러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하지요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닥치면 방법이 생깁니다. 연석산 봉우리에서 15분 정도 내려서면 만항치입니다.
정수궁 마을로 내려서는 길림길이기도 하지요.
만항치에서 서봉까지는 고도를 300미터나 급격히 올려야 합니다.
눈이 얼어붙은 산죽 사잇길이 매우 미끄럽습니다.
웃자란 산죽 탓에 볕이 파고 들지 못해서입니다.
연석산 운장산엔 유독 산죽이 무성합니다.
산죽은 땅속 줄기로 빠르게 번식하면서 주변 다른 식물의 영양분을
빼앗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 식물로 푸대접을 받지요. 서봉이 가까와질수록 산길은 점점 거친 구간이 잦습니다.
로프에 매달려야 하는 바위벼랑도 불쑥 불쑥 나타나고요.
하늘에서 눈발이 아주 조금씩 흩날립니다.
군데군데 짙은 구름이 떠다니나, ‘맑음’이 우세합니다. 바짝 다가선 서봉(1,123m) 정수리 위로 먹구름이 허허로이 지납니다.
서봉의 바위벼랑은 운장산 三連峰 중 단연 돋보입니다.
암봉에 덩그러니 올라앉은 빈 벤치에 눈이 갑니다.
등받이가 날아간 벤치 모습은 8년 전에 본 그대로입니다.
“벤치는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그렇습니다.
등받이가 날아간 허접한 벤치는 8년 전에 본 그대로인데
소생의 다리심은 8년 전에 비해 뚝 떨어져버렸으니… 서봉(칠성대 1,120m)에 올라서서, 지나온 연석산을 굽어봅니다.
가야할 중봉 그리고 동봉도 건너다 봅니다. 휴우~
서봉은 북두칠성의 전설이 숨어 있어 ‘칠성대’로도 불리지요. 이정표가 가리키는 저 길의 끝은 또 어디로 이어질까요?
길은 그렇게 멈춤 없이 세상 어딘가로 이어집니다. 바위벼랑에 얼기설기 이어놓은 쇠파이프 난간을 잡아가며
서봉을 내려와 중봉(운장대 1,126m)으로 향합니다.
이 산은 19세기 중엽까지 ‘주줄산’으로 불려졌으나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운장 송익필이 이 산중에 은거한 이후 산 이름이
그의 號, ‘雲長’으로 바꿔졌다고 전합니다.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을 경계짓는 운장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포함될만큼 능선이 장쾌합니다. 금남정맥 줄기에서 가장 높은 운장산 중봉(운장대 1126m)에 섰습니다.
주변 산군들이 키를 낮춘 듯 둘러봐도 견줄 만한 봉우리가 없습니다.
남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동으로 덕유산 줄기가, 북으로 대둔산과
서대산이 파노라마처럼 아스라이 너울댑니다.
장쾌한 산군의 실루엣이 멋진 스카이라인을 선사하네요. 다시 동봉(삼장봉)으로 발길을 서두릅니다.
아이젠 차기를 귀찮아 하는 몇몇 ‘귀차니스트’들이 얼어붙은
응달진 비탈길을 무모하게 진행해 보지만 어림없습니다.
두어번 씩 나뒹군 후에야 객적은 표정으로 궁시렁대며
주섬주섬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더군요.
‘안전산행’,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위 사진은 현재의 모습. 아래 사진은 정상석이 사라지기 전 모습 이처럼 미끄럽고 가파른 길을 버벅대며 통과했건만 정작 동봉에 이르러
지나온 중봉과 서봉을 건너다보니 소잔등처럼 유순하기만 합니다.
정상 표시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박혀있던 자리만 뻐끔합니다.
굴러 떨어졌나?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네요. 산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면서 찬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납니다.
하산을 서두르라는 시그널입니다.
이제 날머리인 내처사동까지 2.8km는 줄곧 내리막입니다.
급비탈이라 산길은 지그재그로 나 있습니다.
얼어붙어 까칠한 된비알이 녹록치 않았지만 그지없이 즐거웠습니다.
두더지처럼 산죽을 헤쳐가며 걸어도 절로 신바람이 났습니다.
꼬질꼬질해진 밧줄에 매달려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첩첩이 이어지는 山群을 조망하며, 그렇게 늦겨울의 산을 만끽했습니다. 연동마을->연석사->연석산->만항치->서봉(칠성대)->중봉(운장대)->동봉(삼장봉)->내처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