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희한한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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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땐 필이 꽂히면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문 밖 출입도 하지 않고서 뭔가에 골몰하기도 한다.
유별나게 ‘리폼’에 집착하는 아내의 얘기다.
리폼(Reform)이라 함은 ‘낡거나 오래된 물건을 새롭게 고치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미의 ‘리폼’과는 사뭇 다르다.
새로 사 온 옷도 어김없이 고쳐서 입는 희한한 버릇이 있다.
멀쩡히 달려 있는 레이스를 떼어 내 옮겨 붙이는 일은 다반사고
주머니를 뜯어내고, 다른 모양의 단추로 바꿔 달고
심지어는 가위질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하루는 퇴근해 집에 와 보니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명품 가방이 무릎 위에 얹어져 있고 공구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금속 스트링이 길어 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미 고리 몇 개가 제거된 상태였다.
몇 번 밖에 사용하지 않은, 새 것이나 마찬가지인 가방을 큰 맘 먹고
건네 준 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지라 한마디 건넸다.
“수선 흔적이 있으면 명품으로서의 가치는 끝장인데…
지금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요?”
“모셔 두고 쳐다만 보면 뭐하나? 사용하기 편리하게 손질하여 잘 들고 다니는 것이
내겐 명품 딱지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일이네요”
배짱이 두둑한 건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지 사색이 된 밴댕이 속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태연스럽게 잘라 낸 고리와 니퍼를
공구함에 챙겨 넣고선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태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뭇 남편들의 로망 중 하나가 내용 실하게 갖춰진 공구함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우리 집 공구함에는 전동 공구를 비롯해 실내 인테리어 공사에 필요한
웬만한 공구는 다 갖춰져 있다. 뿐만이 아니다.
공구함 속에는 오래된 가방에서 떼어낸 금속장식이나 스트링, 스톱퍼 그리고
온갖 종류의 나사와 부품들로 가득하다. 공구함만으로 보면 거의 工房 수준이다.
이 모든 공구나 부속품의 주 사용자는 아내이다. 반짇고리 역시 마찬가지다.
색깔별 재봉사는 물론 단추, 지퍼, 액세서리들로 넘쳐난다.
새 옷에 달린 레이스도 단추도 지퍼도, 가방과 신발에 부착된 장식도 그렇다.
해당분야를 공부한 전문 디자이너가 어련히 고심하여 부착 위치를 선택했으며
부재료를 선정했을까마는 아내는 여전히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독창적 디자인 놀이에 푹 빠져 산다.
얼마 전 동대문 인근 선술집에서 봉제업에 종사하는 지인과 마주 했다.
거창하게 ‘창조경제’를 안주 삼다가 결국 ‘창조봉제’를 화두로 대화를 이어갔다.
“뷔페식당에선 입맛에 따라 음식을 골라 먹지요.
이처럼 이제 이미 만들어진 옷을 사 입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소비자가
일정 부분 디자인에 참여하자는 겁니다. 소재나 칼라 그리고 기본 틀은
전문 디자이너의 몫이지만 그 외 소소한 부분들에 대한 선택권은 소비자의
몫으로 하자는 발상이지요.”
그는 청바지를 예로 들었다.
“생산자는 소비자가 각자 취향에 맞게 독창적 디자인을 펼칠 여지를 남겨 둔 채
사이즈별로 바지를 만들지요. 소비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미완의 바지를 구매해
입맛대로 옵션(핫픽스, 자수 이니셜, 단추 등)을 추가합니다.
‘미완성 제품(Incompletes)’은 소비자들이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끝을 맺지 않고 내놓는 것입니다.”
기존 완제품의 개념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것,
그야말로 ‘창조봉제’가 아니겠냐며 서로 잔을 맞댔다.
실제 이러한 사례는 이미 외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애리조나의 자동차제조사인 로컬 모터스(Local Motors)가 개발한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이 시스템은 잠재 고객들이 온라인상에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자신의
차를 직접 디자인하는 것을 돕는다. 디자이너가 소비자들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제품을 변형할 수 있도록 해 최종 사용자가 디자인 개발 프로세스에
참여하게 한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21세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프로슈머(prosumer)’의 시대를 예견한 것이다.
‘프로슈머(prosumer)’란 ‘생산자’를 뜻하는 ‘Producer’와 ‘소비자’를 뜻하는
‘Consumer’의 합성어로,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시장에 나온 물건을 선택하여 소비하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물건을 스스로 창조해나가는 능동적 소비자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내의 희한한 버릇은 선견지명이었나?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면 더욱 의기양양해질 터이고,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텐데…이를 어쩌나?
또 어떤 날은 문 밖 출입도 하지 않고서 뭔가에 골몰하기도 한다.
유별나게 ‘리폼’에 집착하는 아내의 얘기다.
리폼(Reform)이라 함은 ‘낡거나 오래된 물건을 새롭게 고치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미의 ‘리폼’과는 사뭇 다르다.
새로 사 온 옷도 어김없이 고쳐서 입는 희한한 버릇이 있다.
멀쩡히 달려 있는 레이스를 떼어 내 옮겨 붙이는 일은 다반사고
주머니를 뜯어내고, 다른 모양의 단추로 바꿔 달고
심지어는 가위질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하루는 퇴근해 집에 와 보니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명품 가방이 무릎 위에 얹어져 있고 공구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금속 스트링이 길어 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미 고리 몇 개가 제거된 상태였다.
몇 번 밖에 사용하지 않은, 새 것이나 마찬가지인 가방을 큰 맘 먹고
건네 준 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지라 한마디 건넸다.
“수선 흔적이 있으면 명품으로서의 가치는 끝장인데…
지금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요?”
“모셔 두고 쳐다만 보면 뭐하나? 사용하기 편리하게 손질하여 잘 들고 다니는 것이
내겐 명품 딱지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일이네요”
배짱이 두둑한 건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지 사색이 된 밴댕이 속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태연스럽게 잘라 낸 고리와 니퍼를
공구함에 챙겨 넣고선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태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뭇 남편들의 로망 중 하나가 내용 실하게 갖춰진 공구함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우리 집 공구함에는 전동 공구를 비롯해 실내 인테리어 공사에 필요한
웬만한 공구는 다 갖춰져 있다. 뿐만이 아니다.
공구함 속에는 오래된 가방에서 떼어낸 금속장식이나 스트링, 스톱퍼 그리고
온갖 종류의 나사와 부품들로 가득하다. 공구함만으로 보면 거의 工房 수준이다.
이 모든 공구나 부속품의 주 사용자는 아내이다. 반짇고리 역시 마찬가지다.
색깔별 재봉사는 물론 단추, 지퍼, 액세서리들로 넘쳐난다.
새 옷에 달린 레이스도 단추도 지퍼도, 가방과 신발에 부착된 장식도 그렇다.
해당분야를 공부한 전문 디자이너가 어련히 고심하여 부착 위치를 선택했으며
부재료를 선정했을까마는 아내는 여전히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독창적 디자인 놀이에 푹 빠져 산다.
얼마 전 동대문 인근 선술집에서 봉제업에 종사하는 지인과 마주 했다.
거창하게 ‘창조경제’를 안주 삼다가 결국 ‘창조봉제’를 화두로 대화를 이어갔다.
“뷔페식당에선 입맛에 따라 음식을 골라 먹지요.
이처럼 이제 이미 만들어진 옷을 사 입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소비자가
일정 부분 디자인에 참여하자는 겁니다. 소재나 칼라 그리고 기본 틀은
전문 디자이너의 몫이지만 그 외 소소한 부분들에 대한 선택권은 소비자의
몫으로 하자는 발상이지요.”
그는 청바지를 예로 들었다.
“생산자는 소비자가 각자 취향에 맞게 독창적 디자인을 펼칠 여지를 남겨 둔 채
사이즈별로 바지를 만들지요. 소비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미완의 바지를 구매해
입맛대로 옵션(핫픽스, 자수 이니셜, 단추 등)을 추가합니다.
‘미완성 제품(Incompletes)’은 소비자들이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끝을 맺지 않고 내놓는 것입니다.”
기존 완제품의 개념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것,
그야말로 ‘창조봉제’가 아니겠냐며 서로 잔을 맞댔다.
실제 이러한 사례는 이미 외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애리조나의 자동차제조사인 로컬 모터스(Local Motors)가 개발한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이 시스템은 잠재 고객들이 온라인상에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자신의
차를 직접 디자인하는 것을 돕는다. 디자이너가 소비자들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제품을 변형할 수 있도록 해 최종 사용자가 디자인 개발 프로세스에
참여하게 한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21세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프로슈머(prosumer)’의 시대를 예견한 것이다.
‘프로슈머(prosumer)’란 ‘생산자’를 뜻하는 ‘Producer’와 ‘소비자’를 뜻하는
‘Consumer’의 합성어로,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시장에 나온 물건을 선택하여 소비하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물건을 스스로 창조해나가는 능동적 소비자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내의 희한한 버릇은 선견지명이었나?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면 더욱 의기양양해질 터이고,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텐데…이를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