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마분봉(馬糞峰) 올라 말똥을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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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분봉(馬糞峰)이라? 봉우리 이름이 우째 껄쩍찌근 하다.
풀이하자면 말똥 봉우리란 얘긴데…
은티마을에서 보이는 충북 괴산의 骨山, 마분봉(776m)은 밋밋하다.
어슷하게 겹쳐있는 봉우리들이 그저 만만하게만 보이는데…
이렇게 은티마을 뒷산 정도로 생각했다간 혼쭐 날 수도 있다.
보이는 겉과 감춰진 속은 심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은티마을은 백두대간 희양산 들머리에 있는, 예로부터 음기? 서린 마을이다.
마을 형세가 여궁혈(女宮穴)이라, 마을 사람들은 음기를 누르기 위해 마을 입구에 남근석을 세우고 전나무를 심어 놓고 매년 음력 정월 초이틀을 종재일로 하여 소지재를 올리고, 한자리에 모여 음복을 한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 희양산 구간의 나들목이라 종주꾼들 누구나 한번씩은 지나친다. 마을 입구 ‘은티주막’은 그래서 늘 산꾼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주모의 걸쭉한 입담을 안주삼아 찌그러진 양은 잔에 옥수수 막걸리 한 잔 걸쳐야 비로소 산행이 끝난다.
이번 산행지는 중딩 친구 몇 눔이 입을 맞춰 괴산 마분봉으로 낙점했다.
긴 세월, 서울서 호구(糊口)하다가 몇 해 전 탈서울을 감행하여 희양산 아래 은티마을로 숨어든 친구(자칭, 황불거사) 위문을 겸해서다.
은티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둔덕에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가 그의 거처이다.
본인은 수행 도량이라 박박 우기지만…
컨테이너 외부를 비닐하우스로 감쌌다. 겨울나기 리모델링을 한 것이다.
한겨울이면 잠깐씩 서울에 머물더니 이번 겨울은 꼼짝 않고 버텨볼 모양인게다.
홀로 면벽수행? 중인 백발 성성한 친구를 만났다.
60이 가까워진 나이건만 만나면 여전히 중딩으로 되돌아 간다.
한바탕 시끌벅적 허접한 수다를 떨어 친구의 객고를 풀어 준 다음, 일곱 친구는 빤히 건너다 보이는 마분봉을 향해 길을 나섰다.
마을 어귀 ‘마분봉 3.8km’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지나며 몇몇이 호기를 부린다.
“이거 코스가 너무 짧은 거 아이가”
“요거 가지고 땀이나 나겠어?”
‘그래 요눔들아, 쪼매만 더 걸어라, 그래도 고따우 소리가 나오나 보자’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절로 알게 될 것이니…
늦가을 산자락은 이미 앙상했고 등로는 낙엽에 묻혀 희미했다.
초입서부터 비탈이 까칠했다.
다섯 친구는 거뜬했는데 둘이 문제였다.
채 30분도 걷지 않아 ‘쉬엄쉬엄 걷자’며 엄살이다.
30분 걷고 주저앉더니, 10분 걷고 드러눕는 꼴이다.
결국 첫봉우리인 692봉에 이르러 뒤를 보니 둘이 보이질 않는다.
10여분을 기다렸으나 기척이 없다.핸폰도 불통이다.
올라오는 다른 산객에게 둘의 행색을 알려 물어봤더니, 지친 모습으로 내려가는 두사람의 행색과 같다고 했다.
초입에서 큰소리 빵빵 날리던 바로 그 두눔은 그렇게 꼬리를 내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대기했다.
은티마을에서 보이던 능선은 봉우리에 가려져 있어 밋밋했는데 역시나 갈수록 등로가 장난 아니다.
오르내림이 심한 암릉의 연속이라 로프구간이 엄청 많다.
네발? 다 써가며 아찔한 암벽을 기어오르니 칼바위 능선이다.
마치 칼날 위를 걷듯 몸의 중심 잡고 걸어야 하는, 이름하여 ‘마법의 성’ 구간이다.
이곳에서 뒤돌아본 시루봉과 희양산은 성채처럼 우뚝하다.
손을 뻗으면 닿을듯 마분봉이 가까이 다가선듯 하나 예까진 몸을 푼 정도다. 본격 암릉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마법의 성을 지나 마분봉까지 아직도 너댓 봉우리를 직벽으로 오르내려야 한다. 군시절 경험한 유격훈련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산객이 뜸한 편이었으나 세미클라이밍 코스가 많은 탓에 앞선 산객들의 꼬리를 물다보니 시간이 지체됐다.
여기저기서 ‘줌마산객’들의 비명이 절로 새어 나온다.
“마분봉까지 이런 코스가 얼매나 더 있능교?”
“가까운 곳에 탈출로는 없어예?
울산 모산악회 뱃지를 매단 ‘줌마산객’들이 질린 표정으로 답을 구했다.
은티마을 ‘황불거사’께서 넉넉한 표정지으며 안심시킨다.
“자고로 길이란 누구나 갈 수 있게 나 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심호흡 한번 하면 길이 보입니다.
지레 겁 먹으면 디딜 곳도 보이질 않는 법이지요.”
컨테이너 안에서 면벽 묵언수행?하여 득한 깨달음인가?
아무튼 모두들 암벽길을 무탈하게 지나갔으니…
온 삭신이 노곤해질 즈음, 눈앞에 UFO가 등장했다.
마분봉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UFO 바위’다.
UFO 바위를 지나서 기암괴석이 널려있는 ‘바위창고’ 아래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걷다가 한두차례 더 로프 신세를 지고 나서야 말똥 봉우리, 마분봉에 닿았다.
정상 한 켠에 말똥을 퍼질러 놓은 것 같은 바위 무더기가 보였다.
바로 ‘馬糞峰’의 이름을 있게 한 말똥 바위群이다.
욕심 같아선 여기서 곧장 인근 악휘봉으로 내닫고 싶었으나 다들 안부로 내려서 골짜기를 따라 은티마을로 빠지잔다.
빨리 하산하여 본 게임?에 열중해야 한다는면서…
이를테면 오늘만큼은 ‘삼겹살파티’가 ‘主’이고 ‘산행’은 ‘副’이니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는게 네 눔들 주장이다.
수북히 쌓인 낙엽은 골짜기 등로를 삼켜 버렸다.
게다가 샛길 탈출로라 그런지 이정표 조차 거의 없다.
눈 덮인 겨울 등로만큼이나 길 찾기가 쉽지않다.
낙엽 아래 감춰진 너덜지대가 엄청 신경 쓰인다.
중도 포기한 두 눔이 앞마당에 불을 피워 석쇠를 걸었다고 알려 왔다.
낙엽 수북한 너덜길을 벗어나자, 삼겹살 생각에 걸음들이 빨라졌다.
마치 먹잇감에 잘 훈련된 세파트들처럼 ㅎㅎ
마분봉… 짧지만 짜릿한 코스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