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바이오 산업계에서 관행과 혁신은 매우 중요하다. 관행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혁신을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협력의 자세가 필요하다.
과학 발전의 조건은? 관행과 혁신이 조화롭게 협력해야 과학의 진정한 발전도 가능하다.
과학 발전의 조건은? 관행과 혁신이 조화롭게 협력해야 과학의 진정한 발전도 가능하다.
관행(慣行)이라는 단어에는 고집스러움, 게으름, 귀찮아함, 변화를 원하지 않거나 두려워함 등 왠지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게 들어 있는 것 같다. 마치 어떤 영역을 오랫동안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나 조직이 그들의 영역을 침범당하거나 누리던 기득권을 빼앗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거나 새롭고 더 발전된 개념이나 운영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행과 혁신으로 쌓아올린 과학의 발전

하지만 관행은 ‘오래전부터 해 오던 대로 함’ 이라는 전통, 역사, 안정, 성숙의 극히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뜻을 함유하고 있는 단어이다. 혁신(革新)은 어떠한가. 새로움, 개선, 타파, 발전 등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 혁신의 사전적인 뜻이다. 하지만 ‘완전히’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 오히려 약간 과격하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행착오, 불완전, 불안정, 부조화와 분란 같은 파괴적인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바이오 분야에서의 관행과 혁신은 무엇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먼저 과학적인 관행을 살펴보자.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현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현상을 일으키는 이유를 찾고 이를 설명하는 기전이나 가설, 이론이 만들어지고 이를 이용하여 일 상생활에서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고 질병 같은 문제점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해법을 찾아낸다.

핵심어가 만들어지고 많은 후속 연구가 이어져 이론과 가설의 수준을 높이고 완성도 있게 학설로 발전시키면 이를 중심으로 학파가 탄생되는 것이 과학적인 관행이다. 결코 구태의연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은, 계속적인 시도와 도전,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유지되는 일종의 전통적인 연구 행위인 것이다.


연구자들은 선행연구에서 근거로 한 이론과 가설, 그리고 사용된 방법을 그대로 혹은 응용, 발전시켜서 점점 더 넓고 깊은 범위의 과학적 진실로 접근한다. 같은 현상이 다른 기 전으로 설명이 되거나 가설이나 이론이 틀렸다고 증명이 될 때까지는 이들에 기반한 많은 후속 연구들이 이뤄져 더 완전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들이 도출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가설이나 이론들이 도전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가설이나 이론 자체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접근 방향이나 방법의 차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응용 범위나 결과들이 달라서 일어나는 일이다.

기존의 가설이나 이론의 완성도가 부족하여 추가 혹은 보완이 필요하거나 심지어는 잘못된 것으로 결론이 나서 새로운 가설이나 이론으로 대치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각 이론이나 가설을 수성(守城)하고 공격하는 학파 간에 많은 갈등과 논쟁이 벌어지고 때로는 아주 격렬한 반목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논쟁과 갈등, 그리고 반목을 풀어줄 수 있는 도구가 있다. 바로 과학적인 데이터이다. 객관적인 비교와 판단이 가능한 수치나 이미지가 가설이나 이론을 검증하고 비교하고 맞고 틀림을 판단할 수 있는, 통계적인 유의성을 도출할 수 있는 잣대 역할을 한다. 논쟁이나 토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충돌이나 감정적인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가설이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과학적 혁신 과정이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순리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지속적인 생태적 고리 형성 위해선 온고지신의 자세 필요해

결과적으로 과학적인 관행과 혁신의 생태적 고리가 발전적이고 생산적으로 연결되고 돌아간다. 그렇다면 과학계의 환경을 구성하고 통제하고 지원하는 부(副)과학계의 현실은 어떠할까.

부과학계의 기능인 연구개발 환경의 구성, 지원과 규제는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철학, 신념, 연구 주제에 대한 선호도와 분위기, 그리고 주도 세력들의 정치적인 성향 등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요소들이 인사, 제도, 정책이나 지원 사업 등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 만들어진 정책이나 기관을 운영하는 주체 들도 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향이 강하 기 때문에 집행이나 운영방식에 편향성을 보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결과들에 대한 자화자찬식 평가가 이루어지면 마침내 ‘관행’이 완성된다.

즉 우리는 우리 식으로 만들고 우리 식으로 운영·평가하는, 발전이나 생산과는 거리가 먼 우리만의, 우리만에 의한, 우리만을 위한 ‘나쁜 관행’인 것이다. 나쁘다고 정의한 이유는 이러한 관행을 개선하거나 발전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우리의 전통과 업적을 무시, 부정하고 반기를 든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즉 정치나 경제적인 이유로 인하여 결정, 운영 그리고 평가의 주체가 바뀔 경우 인사, 제도, 정책 등의 급격한 변화가 올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 대한 강박적인 공포심을 갖기 때문에 작거나 큰 변화에 대해 초과민 반응을 하기도 한다.

반대편의 사람들을 마치 우리 영토를 침범하고 지배하러 온 진주군이나 점령군으로 인식하여 관행이 혁신이라는 파괴적인 개념을 앞세운 반대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막으로 맹신하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관행과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혁신을 만들어 지속적인 부과학계의 생태적 고리를 형성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역사나 과거는 배워야 할 공(功)과 성공, 그리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과(過)와 실패가 공존하는 소중한 배움과 깨달음의 자료이며 절대로 부정하고 흠집을 내거나 비난하기 위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쁜 결과, 혹은 실패가 최선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고치거나 교정할 수 있는 실수나 오류의 결과인지를 냉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고 판단해야 한다.

관행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오는, 부정하거나 파괴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공과와 성패의 경험과 지혜가 담겨 있는 값진 재산이다. 이를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고 권리이다.

혁신은 죽은 가지를 잘라 새 순이 돋게 하고, 썩은 뿌리를 들어내고 새 묘목을 심는, 새 생명을 부여하고 연장하는 미래를 지향하는 행위이다. 혁신은 열정과 노력을 통해 얻은 새로운 지식과 개념을 선의의 경쟁과 협상을 통해 충돌과 갈등, 반목과 질시를 극복하고 조화와 융합을 이끌어 내는 도구이어야 한다. 관행과 혁신은 발전을 향해 함께 굴러가는 수레바퀴라는 것을 기억하자.

<저자 소개>

[김선진의 바이오 뷰] 관행과 혁신
김선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비뇨기과 전문의다. 일본국립암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을 거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근무했다. 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고 플랫바이오를 설립했다. 중개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암학회(AACR)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