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미나리
지난달 28일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가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제의 주요 상을 사실상 아시아 콘텐츠가 다 가져간 것이다.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간 한 가족의 이야기다. ‘노매드랜드’는 도시가 경제적으로 붕괴된 후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한 여성의 여정을 그렸다. 두 작품의 쾌거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할리우드 시장에서 아시아 콘텐츠가 그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페어웰
페어웰
세계 시장에 아시아 콘텐츠 열풍이 불고 있다. ‘미나리’ ‘노매드랜드’는 다음달 25일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등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페어웰’ 등 참신하면서도 보편적인 감성으로 접근한 아시아 콘텐츠들이 소재 고갈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유럽 시장의 콘텐츠 공백을 채우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아시아 배경 작품까지 잇달아

아시아 콘텐츠의 인기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면서 본격화됐다. 지난달 4일 국내 개봉한 영화 ‘페어웰’도 화제다. 뉴욕에 사는 빌리와 그 가족이 할머니의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따뜻한 거짓말을 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배우 아콰피나는 지난해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페어웰’을 만든 중국계 미국인 룰루 왕 감독의 연출력도 호평을 받고 있다.
윈드
윈드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디즈니 최초로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만들었다. 넷플릭스의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시즌3는 서울을 배경으로 제작됐다. 내용도 한국계 미국인 라라 진의 성장담을 그렸다. 픽사는 한국 할머니를 내세운 단편 애니메이션 ‘윈드’를 지난 2일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했다.

보편적 가족애로 틈새 공략

노매드랜드
노매드랜드
호평을 받고 있는 콘텐츠는 대부분 아시아 특유의 가족애가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 전 세계에 가족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외국 작품에선 두드러지지 않는 조부모를 부각시켜 화제가 되고 있다. ‘미나리’의 할머니 순자(윤여정 분)는 서툴기도 하고 까칠해 보여도 가족을 사랑하고 아낀다. ‘페어웰’ ‘윈드’도 아시아 할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담고 있다.

이민 2세대에 해당하는 30~40대 아시아계 감독의 역량도 두드러진다. 이들은 아시아와 현지의 이질적인 문화를 잘 조합해 차별성과 신선함을 모두 갖췄다. ‘페어웰’의 배급사 오드 관계자는 “아시아계 감독의 활약이 할리우드의 판을 바꾸며 기분 좋은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양극화된 미국·유럽 콘텐츠 시장의 틈새도 파고들고 있다. 화려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급 작품이거나 소수 마니아를 위한 독립·예술영화로 이분화된 것이 이 지역 시장의 특징이다. 아시아 콘텐츠는 상업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참신함을 내세워 중간 지점을 메우고 있다는 평가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