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총장은 4일 검찰 구성원들에게 보내는 입장문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자신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법치주의를 위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작년에 부당한 지휘권 발동과 징계 사태 속에서도 직을 지켰다"며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제 그토록 어렵게 지켜왔던 검찰총장의 직에서 물러난다"며 "검찰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와 상식,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총장은 검찰 수사권 폐지 등 현안을 언급하며 자신도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이 부패범죄 등 6대 중대범죄로 한정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며 "그동안 우리는 검찰의 직접수사를 최대한 자제해 꼭 필요한 범위에 한정하도록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 시행된 형사사법 제도에 적응하느라 애를 많이 먹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와중에 최근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해 검찰을 해체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돼 더 혼란스럽고 업무 의욕도 많이 떨어졌으리라 생각된다"고 했다. 또 "여러분들도 현 상황에 대해 분노하면서 걱정하고 계실 것"이라며 "총장으로서 안타깝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아울러 "저는 이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저의 마지막 책무를 이행하려고 한다"며 "여러분들과 함께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을 목표로 최선을 다했으나 더 이상 검찰이 파괴되고 반부패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윤석열 총장은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치는 검찰개혁과 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검찰의 수사권 폐지와 수사청 설치는 검찰개혁이 아니다"며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다. 형사사법 제도는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돼 있기 때문에 한 번 잘못 설계되면 국민 전체가 고통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수사와 재판 실무를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졸속 입법이 나라를 얼마나 혼란에 빠뜨리는지 모를 것이다"면서 "수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재판을 위한 준비활동이다. 수사와 기소는 성질상 분리할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재강조했다.
끝으로 "엄중하고 위급한 상황이지만 국민들만 생각하라"며 "동요하지 말고 항상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끝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글을 마쳤다.
앞서 윤석열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전격 사의를 밝혔다. 이후 법무부가 청와대에 보고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즉각 사의를 수용했다. 사표 수리 등 행정 절차만 남아 있으며 윤석열 총장은 이날 오후 6시께까지 업무를 수행한 뒤 퇴근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윤석열 총장의 태도로 미뤄 사의를 철회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18일 신년 기자회견 때만 해도 윤석열 총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악화 일로인 여권과 검찰의 갈등을 윤석열 총장의 퇴진으로 끊어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총장의 사퇴로 대검찰청은 조남관 대검 차장의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됐다. 청와대는 검찰총장 후임 인선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