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1967)
'마릴린'(1967)

미술 작품을 보는 순간 누구의 작품인지 단번에 떠오르시나요. 평소 미술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작가를 쉽게 맞출 수 있는 작품도 간혹 있습니다. 특정 이미지를 대량 생산해서 많은 대중들에게 알린 작품이 특히 그렇죠.

대표적으로 마릴린 먼로를 그린 '마릴린' 연작을 꼽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이 작품들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작가의 이름도 쉽게 떠올릴 수 있으실 텐데요.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1928~1987)입니다. 워홀은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였던 마릴린 먼로를 작품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천에 잉크를 발라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실크 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먼로의 이미지를 대량 복제했죠.
워홀의 이름을 떠올리고 나니, 자연스럽게 얼굴도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 해도 사실 얼굴까진 잘 생각이 나질 않는데요. 하지만 워홀은 세상을 떠난 지 35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얼굴도 쉽게 떠올립니다. 그가 작품 뿐 아니라 스스로를 마케팅의 대상으로 삼고 적극 알렸기 때문이죠.

이쯤 되면 워홀을 '마케팅의 대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요.

워홀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가난한 슬로바키안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까지 피츠버그에서 다녔던 그는 성공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보그' 등 잡지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죠.

본격적인 미술 작업은 1960년부터 시작했는데요. 그 과정은 기존의 화가들과 사뭇 달랐습니다. 워홀은 작업실을 만들어 '팩토리(factory·공장)'라 칭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제품을 대량 생산하듯 자신의 작품을 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매스 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 문화에서 이미지를 끌고 와 강렬한 색채로 재창조했는데요. 마릴린 먼로 뿐 아니라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등 당대 유명인의 이미지를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찍어 냈습니다. 앱솔루트 보드카, 캠벨 수프 같은 일상 속 상품도 작업 대상으로 삼았죠. 이런 작업을 도와주는 '아트 워커(art worker·예술 노동자)'도 고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친근하고 익숙한 이미지를 찾아내고 대량 생산하는 점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워홀도 스스로를 CEO라 여겼던 걸까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업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물론 이를 예술이라 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똑같은 이미지를 복제한 그의 작품에서 원본이 가진 아우라를 느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워홀은 그 희소성의 틀에만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밌게 예술을 즐기길 원했습니다. 팝 아트에서 '팝(Pop)'이 '포퓰러(popular·대중적인)'의 뜻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의미입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세상의 거울’이라 칭하며, 세상의 다양한 이미지를 담아내고 보여주려 했죠.

그는 코카콜라 병 이미지로 작업을 하며, 팝 아트를 코라콜라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돈을 더 낸다고 더 맛있는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더 내면 콜라 수가 많아지지 내용물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마시는 콜라도 나와 마시는 콜라와 같다.”

워홀은 오늘날로 따지면 각종 모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인지도를 높이는 '인싸(인사이더)’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그는 은빛 가발, 검은 선글라스 등으로 자신을 한껏 꾸미고 사진을 찍어 널리 알렸습니다. “자기 홍보는 마치 심심풀이 땅콩같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으니까”고 말했을 정도였는데요. 그가 얼마나 스스로를 알리는 데 심취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건 이런 노력 덕분일 것입니다.

오늘날 인싸들이 그렇듯, 워홀도 인맥을 열심히 쌓았죠. 팩토리에 유명인들을 불러 초상화 작업을 해 주고 함께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의 독특하고 재밌는 삶과 철학이 담긴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전시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2월 26일~6월 27일)이 서울 여의도에 새로 문을 연 '더현대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는데요. 국내에서 6년 만에 열리는 워홀의 대규모 전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공간에 대중성 있는 워홀의 작품이 걸린다니 꽤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까요. 작품들을 보면 그가 한 이 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깊숙하게 얕은 사람이다."
'마이클 잭슨'(1984)
'마이클 잭슨'(1984)
'블랙 빈'(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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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