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코로나 백신 출하식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백신은 과학인데 이를 정치화하는 움직임이 있어 안타깝다”고 한 발언은 ‘문면’만 보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정부의 불투명한 방역행정, 여권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이 백신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키웠다는 ‘문맥’까지 고려하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무엇보다 국민을 계도와 훈계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총리의 발언태도가 오히려 국민의 ‘방역 피로감’을 키운다는 비판여론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다.

백신 늑장 확보로 접종과 관련한 혼선이 빚어진 것은 차치하고라도, 백신을 과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접종을 정치화한 것은 다름아닌 정부·여당 인사들이다. “코로나 백신을 먼저 접종하는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두 달 전에 관찰할 기회”(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라거나 “검증받지 못한 백신 추정주사를 주입하는 것은 국민을 ‘마루타’로 삼는 것”(장경태 의원)이란 발언이 그렇다. 앞서 청와대가 국민이 불안해하면 솔선수범하겠다고 했는데도, 대통령 ‘1호 접종’ 주장에 “국가원수가 실험 대상인가”(정청래 의원)라는 상식 밖 반응을 내놓거나, 대통령을 대신해 먼저 백신을 맞겠다고 나선 이들도 여권 정치인이다.

소통과 설득 대신 위압적인 발언을 앞세운 정 총리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 총리는 그제 “방역수칙 위반 업소를 4차 재난지원금 지원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윽박질렀다. 설 연휴 직후엔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보다 더 우려스런 것은 해이해진 방역의식”이라고 했다.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발언들이다. 국민을 하대(下待)하는 듯한 태도도 문제다. ‘단체기합’ 주듯 국민을 겁박하고 훈계하는 모습에서 ‘공복(公僕)’이란 인식은 찾기 힘들다.

지난 1년간 우리 국민만큼 일상의 불편과 생업 차질을 감수하고 정부의 방역수칙에 충실하게 협조한 사례도 없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2억 명 이상 접종하고 나서야 백신을 구경하게 됐다. 그나마도 초기에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효능 논란에 휘말려 65세 이상 고령층 접종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일했으면 없었을 일이다. 거친 언사까지 동원해 적반하장식으로 방역 책임을 국민에게 돌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