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던 2007년 집단 따돌림을 당할 당시 유독 심하게 괴롭힌 한 동급생이 어느 날 뒷머리를 세게 때린 뒤부터다.
강씨는 그날 밤 갑작스러운 고열로 찾은 병원에서 시신경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1.0으로 좋던 시력은 0.2로 떨어졌다.
가해자들은 수업시간에 몰래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구석에 세워놓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졸업하고 세월이 흘렀지만,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인이 겹치다 보니 가해자 근황도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됐다고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친구들을 통해 들어보니 가해자는 유명 오토바이점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돼 있었다.
강씨는 21일 "친구를 통해 소식을 전하니 가해자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며 "잘 나가는 사장님이 된 모습에 허탈한 마음도 들고, 눈이 안 보일 때마다 그가 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최근까지 인기리에 연재된 한 웹툰은 성인이 된 학교폭력(학폭) 가해자가 트라우마를 안고 살다 숨진 피해자의 몸에 들어가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이 설정이었다.
학폭을 희화화한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매주 댓글창에는 피해를 겪거나 방관했던 독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다수 달리며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만화 속 가해자의 반성과 해피엔딩은 현실과 다르다고 한다.
멀쩡하게 살아가거나 심지어 부유하고 유명해진 가해자를 보는 속은 더 멍든다는 게 피해자들의 말이다.
체육계를 넘어 최근 전 사회적 이슈가 된 '학폭 미투' 사태의 발단은 가해자의 SNS를 보고 과거를 떠올린 피해자의 폭로였다.
남모(28)씨는 중학생 때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의 이름이 SNS에 뜨자 놀란 경험이 있다.
가해자는 육아용품을 소개하고 팔기도 하는 이른바 '인플루언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체격이 왜소했던 남씨는 중학생 때까지도 아동용 옷을 입었고, 가해자는 '거지'라며 동급생들과 함께 남씨를 둘러싸고 언어폭력을 가했다고 한다.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남씨는 성인이 되고서도 한동안 옷에 집착했다고 말했다.
사과 한마디 받지 못했지만, 가해자는 행복해 보였다.
남씨는 "자기 아이에게 옷을 입힌 사진을 보니 예쁘기는 하더라"면서 "잘 살면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도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착잡하다"고 했다.
이처럼 성인이 된 학폭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관리하고 치유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학생 피해자 지원시설은 그나마 있지만, 성인 피해자들을 도와줄 곳은 병원 외 없는 상황"이라며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안고 산 피해자나 가족의 문의가 많은데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