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7년차…단체 통하지 않고 맘카페 만들어 직접 봉사
"후원가정 아이들 환한 얼굴빛에 감동…힘 다할 때까지 평생 하고 싶어"
[#나눔동행] "나누는 기쁨은 명품백으로도 못 얻어요" 주부 김은진씨
"나누면 제가 더 행복해지거든요.

이런 벅찬 기분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어요.

"
세종에 사는 주부 김은진(43) 씨는 수년째 나눔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동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2015년 처음 지역사회 주부를 대상으로 무료 리본공예 재능기부 활동을 시작한 김씨는 그 인연으로 자원봉사 단체에 발을 들였다.

단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후원 물품을 전달하기도 하고, 따로 저소득층 가정을 찾아 집에서 만든 밑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러다 단체 보조금 집행이 시작되기 전인 매년 1·2월에는 지원이 끊기다시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씨는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며 "어차피 단체에 소속돼 다녔을 때부터 얼굴을 익힌 상태라 따로 해볼까 마음을 먹고, 뜻있는 사람들을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나눔동행] "나누는 기쁨은 명품백으로도 못 얻어요" 주부 김은진씨
그렇게 만든 것이 세종 바른맘 카페.
2017년 김씨와 지인 몇 명으로 시작한 카페는 이제 23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제법 큰 규모의 모임이 됐고, 운영진 20여명이 일주일에 한번 일대일로 한 가정씩 회원들이 후원하는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대부분 30∼40대 젊은 주부들로, 밑반찬을 만들거나 휴지·세제 등 생활용품 등을 사서 보내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치킨을 후원하는 자영업자도 있다.

지난 19일에도 한 주부 회원이 만든 장조림, 진미채, 계란말이, 시금치, 무생채, 어묵 볶음 등 집에서 직접 만든 밑반찬을 김씨가 후원 가정에 배달했다.

김씨는 "돌쟁이 아기를 두고 있는 분인데, 마치 선물 세트처럼 구첩반상을 직접 만들어 포장해서 보내오셨다"며 "제 자식도 그렇게 먹이기 힘든데, 돈보다 정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맘카페 회원들은 대부분 단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기부하기 보다는 직접 후원 가정을 찾는 것을 선호한다.

김씨는 운영진과 함께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회원들을 위해 대신 물품을 전달해주기도 하고, 취약가정 돌봄 선생님 등을 통해 주위 어려운 가정을 발굴하는 일도 하고 있다.

[#나눔동행] "나누는 기쁨은 명품백으로도 못 얻어요" 주부 김은진씨
그는 "맘카페에 글을 올리면 후원하고 싶다는 댓글 문의가 많이 올라오는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보조금이 과연 투명하게 쓰일까 하는 불신 때문인 것 같다"며 "이 때문에 회원들도 돈보다는 물품을 기부하려 하고 어느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봉사활동도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면서 후원 가정의 아이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처음엔 서먹해서 낯선 이를 집 안에 들이기를 꺼리던 한 조손가정의 여자아이도 이제 그가 대문에 들어서면 '이모'라고 부르며 반긴다.

최근에 할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밥을 해줄 사람이 없자 '이모'들이 몰려 와 어지러진 방을 치워주고, 전기밥솥이며 냄비 등도 장만해준 덕분에 끼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도 병간호하느라 집에 안 계시니 아이가 혼자 자야 하는데, 걱정이 된 회원들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밥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있다"며 "다들 엄마들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애틋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할머니가 쓰러졌을 때는 울며 불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아이도 점차 안정을 되찾고, 이모가 해준 제일 좋아하는 요리인 된장찌개를 먹으며 방학을 보내고 있다.

원체 아이들을 좋아해 어린이집 보육 돌보미도 했던 그는 지금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김씨는 "회원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까 아무리 자발적인 모임이라도 그냥 대충대충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눔동행] "나누는 기쁨은 명품백으로도 못 얻어요" 주부 김은진씨
엄마와 함께 봉사를 다니던 아이들도 이제는 제법 커서 그에게 큰 힘이 돼 준다.

그는 "아이들이 어리니 놓고 갈 수가 없어서 후원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는데, 유치원에 다녔던 아이들이 어느새 커서 초등학교 고학년생이 됐다"며 "처음에는 그저 따라다니기 바빴던 아이들이 물건도 들어주고, 후원가정 근황도 묻기도 하는 걸 보면 제법 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언젠가 첫째가 '엄마 이렇게 고생해서 월급은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을 때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는 "아무리 비싼 명품백을 사도 그 기쁨이 며칠 밖에 안 가는데, 아이들 간식 배달하러 집에 들어서면 얼굴 빛이 온전히 환해지는 모습 그거 하나로 뿌듯해져 그 기억이 정말 오래 간다"며 "기력이 다할 때까지는 이 일을 평생 하고 싶다"며 웃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