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강한 남녀유별 의식이 의녀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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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출간
"유교는 여성이 전문적인 일을 하도록 권장하는 사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교의 강한 남녀유별 의식이 의녀라는 독특한 여성 전문 의료인을 탄생시켰다.
"
신동원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겸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장은 신간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책과함께)에서 조선 시대 의녀에 관해 이런 주장을 펼친다.
문화재위원과 한국과학사학회장, 대한의사학회장 등을 지낸 신 교수는 과학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태종은 1406년 제생원(훗날 혜민서) 병원장 허도의 건의로 의녀 제도를 실시했다.
당시 허도는 부녀자가 남자 의원에게 진료받기를 꺼리다가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며 의녀를 둬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후 의녀 제도는 조선 말기 양의사가 들어올 때까지 유지됐다.
"의원은 윗방에서 여자 환자는 아랫방에서, 사이에 휘장을 치고 손목만 내밀고서 진맥을 봤다.
휘장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서 맥 짚을 자리만 내놓고 흰 명주로 싼 손목을 내놨다.
"
책은 100년 전에 태어난 한 양반집 할머니가 의사와 환자가 내외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연구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해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의녀 제도가 있었던 1900년대 초에도 남녀유별이 엄격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소설과 사극 등 소재가 된 '대장금'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장금은 30년간 궁에서 의녀로 지냈고, 중종이 세상을 떠난 뒤 은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관에 딸린 여종 출신으로 혜민서에 들어온 후 '장래 의녀'와 '내의원 의녀' 등을 거쳐 '차비대령 의녀'가 됐고, 그 가운데에서도 특출한 재능을 발휘해 왕의 진료까지 볼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책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문구를 거론하며 담배의 역사에 대해서도 살핀다.
담배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건 1610년께라고 추정한다.
이수광이 1614년에 쓴 책 '지봉유설'에 "최근에 담배가 일본에서 들어와 널리 퍼졌다"라는 구절이 있다는 것도 추정의 근거로 든다.
당시 담배를 둘러싼 찬반 논쟁도 전한다.
저자는 양측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결국 흡연이 승리를 거뒀다고 분석한다.
자연재해와 질병, 식량 부족, 신분제 등 현실 속에서 가장 싼 값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킨 기호품이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책은 "오늘날에는 담배가 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담배를 멀리하지만, 옛적에는 담배가 아니더라도 죽음의 원인이 수두룩했고 암에 걸릴 정도로 오래 사는 사람도 드물었다"며 "건강에 해롭다는 게 금연할 이유가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치와 고추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저자는 고추가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나라만의 김치 혁명이 일어났고, 색깔이 지금 김치처럼 빨개졌으며, 젓갈의 비린 냄새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었다고 말한다.
고려 시대까지 김치는 단순히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 수준이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고추가 언제 조선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수광의 '지봉유설' 기록을 토대로 1613년 이전에 일본을 통해 고추가 들어온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1590년대에 있었던 임진왜란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책에는 천문학과 풍수지리, 실학사상, 의학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저자는 성덕대왕신종과 석굴암, 고려청자, 금속활자 등 11개 대표 유물·유적에 관해 설명하고 19세기 후반 개항 이후 시행착오,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을 겪고도 크게 성장한 한국의 과학기술 역사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연합뉴스
"유교는 여성이 전문적인 일을 하도록 권장하는 사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교의 강한 남녀유별 의식이 의녀라는 독특한 여성 전문 의료인을 탄생시켰다.
"
신동원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겸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장은 신간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책과함께)에서 조선 시대 의녀에 관해 이런 주장을 펼친다.
문화재위원과 한국과학사학회장, 대한의사학회장 등을 지낸 신 교수는 과학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태종은 1406년 제생원(훗날 혜민서) 병원장 허도의 건의로 의녀 제도를 실시했다.
당시 허도는 부녀자가 남자 의원에게 진료받기를 꺼리다가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며 의녀를 둬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후 의녀 제도는 조선 말기 양의사가 들어올 때까지 유지됐다.
"의원은 윗방에서 여자 환자는 아랫방에서, 사이에 휘장을 치고 손목만 내밀고서 진맥을 봤다.
휘장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서 맥 짚을 자리만 내놓고 흰 명주로 싼 손목을 내놨다.
"
책은 100년 전에 태어난 한 양반집 할머니가 의사와 환자가 내외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연구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해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의녀 제도가 있었던 1900년대 초에도 남녀유별이 엄격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소설과 사극 등 소재가 된 '대장금'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장금은 30년간 궁에서 의녀로 지냈고, 중종이 세상을 떠난 뒤 은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관에 딸린 여종 출신으로 혜민서에 들어온 후 '장래 의녀'와 '내의원 의녀' 등을 거쳐 '차비대령 의녀'가 됐고, 그 가운데에서도 특출한 재능을 발휘해 왕의 진료까지 볼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책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문구를 거론하며 담배의 역사에 대해서도 살핀다.
담배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건 1610년께라고 추정한다.
이수광이 1614년에 쓴 책 '지봉유설'에 "최근에 담배가 일본에서 들어와 널리 퍼졌다"라는 구절이 있다는 것도 추정의 근거로 든다.
당시 담배를 둘러싼 찬반 논쟁도 전한다.
저자는 양측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결국 흡연이 승리를 거뒀다고 분석한다.
자연재해와 질병, 식량 부족, 신분제 등 현실 속에서 가장 싼 값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킨 기호품이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책은 "오늘날에는 담배가 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담배를 멀리하지만, 옛적에는 담배가 아니더라도 죽음의 원인이 수두룩했고 암에 걸릴 정도로 오래 사는 사람도 드물었다"며 "건강에 해롭다는 게 금연할 이유가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치와 고추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저자는 고추가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나라만의 김치 혁명이 일어났고, 색깔이 지금 김치처럼 빨개졌으며, 젓갈의 비린 냄새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었다고 말한다.
고려 시대까지 김치는 단순히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 수준이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고추가 언제 조선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수광의 '지봉유설' 기록을 토대로 1613년 이전에 일본을 통해 고추가 들어온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1590년대에 있었던 임진왜란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책에는 천문학과 풍수지리, 실학사상, 의학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저자는 성덕대왕신종과 석굴암, 고려청자, 금속활자 등 11개 대표 유물·유적에 관해 설명하고 19세기 후반 개항 이후 시행착오,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을 겪고도 크게 성장한 한국의 과학기술 역사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