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사라지고 채용 줄자 고향·부모 집으로
보증금 줄이고 월세 내려도 방 안빠져…임대업자들도 "못 버텨"
"원룸 수요가 절반은 줄었어요.

봉천동 한 빌라는 작년 여름부터 신규 거래가 1건도 없어 쭉 공실 상태죠."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모(30) 씨는 인근 원룸촌의 공실률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원룸에 살며 아르바이트나 취업준비 등을 하던 청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구직난에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원룸촌을 떠나고 있다.

관악구의 다른 부동산 중개업자 A씨는 "상권 쇠퇴로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이 월세조차 내기 힘들다며 원룸을 떠나고 있다"며 "이 일대가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옥탑에 살던 프리랜서 댄스 강사 최모(32) 씨는 지난해 말 방을 빼고 경기도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댄스 강습소 운영이 어려워져 일자리를 잃은 터라 월세 35만원을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씨는 "월세가 저렴한 데다 옥상에서 댄스 연습도 할 수 있는 정든 집이었지만, 수입이 끊긴 이상 방을 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 '비대면 대학'에 신입생 안 오고, 직장인 수요도 줄어
예전이라면 대학 신입생들과 갓 취업한 새내기 직장인들이 북적여 원룸촌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바쁠 시기이지만, 올해는 신규 원룸 입주 문의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광진구 세종대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모(48) 씨는 "여기서 32년 일하면서 학생들이 이렇게 없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작년에는 코로나19 사태가 구정쯤 시작해 그 전에 수시로 입학한 학생들이 방을 얻으면서 장사가 조금 됐다"며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자 대학원생, 수시 입학생, 복학생들이 방을 찾는 12월에도 장사가 안됐고, 정시 입학생들이 오는 1월에도 여전히 수요가 적다"고 했다.

또 지난해부터 기업들이 공채 제도를 없애거나 경영난 등으로 채용을 대폭 줄이면서 구직난이 원룸 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2호선 서울대입구역과 사당역 인근 원룸촌은 강남 등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주거지로 많이 찾는 곳이지만, 올해에는 새내기 직장인들의 문의가 뜸하다.

사당동에서 11년째 영업 중이라는 한 중개업자는 "직장인 신규 수요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30% 수준으로 줄었다"며 "올해는 대기업에 합격해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을 거의 못 봤다"고 했다.

◇ 보증금 줄이고 월세 내려도 공실…원룸 매각하려는 임대업자도
남아도는 공실에 '울며 겨자먹기'로 보증금이나 월세를 내리는 임대인들도 많다.

최근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한 원룸 임대인은 1천만원 받던 보증금을 절반까지 줄였다.

대학가 인근 중개업자들은 새로 나온 매물 월세를 평균 5만∼10만원씩 내렸다.

월세를 낮춰도 수요가 회복되지 않자 임대업을 포기하겠다며 원룸을 팔려고 내놓는 이들도 나타났다.

세종대 인근에서 주차장이 포함된 원룸을 운영하던 B씨는 최근 도저히 방이 안 나간다며 건물을 30억원에 내놨는데, 팔리지도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국대 후문 인근의 원룸 주인 송모(62) 씨는 "방의 3분의 2가 공실이라 죽겠다"며 "주변에 임대업을 하던 사람들은 다 포기하고 나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