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두 참고 양보해야 할 때…코로나로 가족 간 만남 소중함 깨닫길" "우리 승우야, 보고 싶구나.
건강하고 다음에 올 때는 할아버지가 용돈 올려줄게."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오후, 전남 담양군 창평면 송영종(72)·김금남(68) 씨 부부의 한옥 하심당(下心堂)에서는 김치를 담그는 손길이 분주했다.
홍주 송씨 이오당 파의 계보를 잇는 종손 집안이지만 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두어 집이 나눠 먹을 분량의 김치만 뚝딱 만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정부에서 설 연휴까지 5인 이상 집합 금지 행정명령을 유지하면서 가족들이 모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신 손주들이 태어난 직후부터 익힌 영상통화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송씨의 첫 영상통화 상대는 나주에 사는 손자 송승우(10) 군이었다.
학원을 다녀오는 길이라는 승우 군은 "할아버지, 할머니 작년 12월에 보고 못 만났는데 또 못가요.
다른 친척들은 거의 반년 못 봤어요.
사촌 누나도 보고 싶은데"라며 아쉬운 마음을 한껏 드러냈다.
의젓하게 말을 잘하는 손주였지만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 눈에는 마냥 아기처럼 보였는지 송씨 부부는 "보고 싶다.
건강해야 해. 하심당에 오면 용돈 올려줄게"라며 승우 군을 달랬다.
둘째 며느리와도 영상 통화로 안부를 나눴다.
코로나 이후 온 가족이 다 모여본 적이 없다는 며느리 김영애(37) 씨의 말에 송씨는 "그래, 우리 모임도 못 했네. 그럼 4남매와 내가 적립하는 장학금 많이 쌓였겠다"라며 특유의 유쾌한 모습을 보였다.
송씨가 소소한 안부를 물으며 "내가 좋아하는 우리 며느리, 건강하고 아기들 잘 키우자"고 덕담하자 며느리 김씨는 손으로 하트 표시를 하며 "사랑합니다"라고 화답했다.
넓은 한옥에서 외아들로 자라 가족에 대한 정이 유독 더 애틋한 송씨였지만 "나라가 없으면 효(孝)도 없다"며 가족들에게 한자리에 모이지 말자고 했다.
지금은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참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한 집에 70∼80대 노인 한두 명만 거주하는 고향 마을이 설에도 적막한 모습을 보면 씁쓸한 마음도 든다.
송씨는 "코로나19가 없었을 때도 시골의 설은 쓸쓸했다"며 "자녀들이 하루 반 정도 있다가 마을에서 떠나간 뒤의 허전함은 누구도 조명을 안 한다.
노인들은 그 여파가 며칠씩 간다"고 밝혔다.
그는 "나와 내 아내가 겪었듯이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모두 고충이 있을 거다.
그래도 오랜 시간 혼자였던 나는 가족이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며 "코로나로 뜻하지 않게 못 만나면서 앞으로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연락해야겠다고 느낀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내 눈에는 손자도 자식도 아직 애들 같다"이라며 "얼굴이 안 좋아진 걸 보면 부모는 가슴이 타들어 간다.
모두 건강하고 코로나19 잘 이겨내자"고 새해 덕담을 건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