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400억 규모 수리계약 미뤄…지역민 "출항허가 내주지 않아야"
2019년 9월 28일 울산시 동구 염포부두에서 큰 폭발사고가 있었다.

정박 중인 네덜란드 '스톨트 탱커'소속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이란드'호에서 폭발 및 화재가 발생해 17명이 다치고, 배가 거의 다 타버렸다.

이 배를 고쳐 쓰기로 한 선사는 조선소가 있는 경남 통영시 안정국가산업단지에 입항해 선내에 남은 폐기물을 처리하고 수리를 받겠다며 지난해 마산지방해양수산청 통영사무소에 입항 신청을 했다.

이 배에는 불탄 설비와 함께 스티렌 모노머(SM) 등 다량의 유해 화학물질 수십 종이 실려 있었다.

지역 어민들은 입항·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유해 물질이 청정해역인 통영 앞바다를 오염시킬 수 있다며 선상 시위를 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반면 폐기물 처리와 선박 수리가 어려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입항을 허가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입항 찬성론자들은 폐기물 처리, 선박 수리를 통영에서 하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란 논리를 내세웠다.

통영시는 조선업과 관광업이 주력이다.

그러나 안정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중형 조선소들이 해운 경기 침체 영향으로 최근 거의 몰락했고 관광업 역시, 지난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마산지방해양수산청 통영사무소는 선박 입출항·폐기물 처리 과정에 엄격한 조건을 달아 지난해 9월 입항을 허가했다.

선사와 폐기물 처리계약을 한 수리조선업체는 안정국가산업단지 내 비어있는 HSG성동조선 설비, 인력을 활용해 폐기물 처리를 시작했다.

폐기물 처리는 오는 5월 말이나 6월 초에 끝난다.

문제는 선사가 50억원 정도 들어간 폐기물 처리보다 훨씬 규모가 큰 300억∼400억원대 선박수리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선사는 수리비가 더 싸다는 이유로 폐기물 처리가 끝나면 배를 예인해 중국에서 수리할 움직임을 보인다.

수리조선업체 측은 "어렵게 폐기물을 처리하고 나니 외국에서 수리를 받겠다고 하면서 계약을 늦추려 해 난감하다"며 "선사는 입항 허가 조건을 지켜야 한다"고 6일 밝혔다.

지역민들 역시 "수리를 하지 않고 떠나려 한다면 정부가 출항허가를 내주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톨트 그로이란드'는 지난해 마산지방해양수산청 통영사무소가 제시한 11개 조건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하고서야 통영으로 입항할 수 있었다.

당시 조항 중에 '모든 항해장비, 주 추진기관, 해양오염 방지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출항해야 한다'란 내용이 있다.

이 조항을 해석하면 폭발·화재 여파로 자력 항해가 어려운 '스톨트 그로이란드'는 폐기물 처리 외에 선박 수리까지 통영에서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선사 측은 이 조항을 회피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산지방해양수산청 통영사무소는 "스톨트 그로이란드가 입항 조건을 지키고 안전한 상태에서 출항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