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미국서 '미나리'는 외국어영화, '바스터즈'는 로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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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골글 외국어상 후보되자 '영어30%' 최우수작 후보 바스터즈 소환
드라마부문 최우수작품상은 '영어 과반' 요건…두 작품에 다른 잣대 김수진 기자·이율립 인턴기자 = 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3일(현지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는 소식은 한국 영화팬들에게 '낭보'인 동시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윤여정씨가 출연한 영화가 미국의 권위있는 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은 국내 영화팬들에게 기쁜 소식이지만 이 영화가 '최우수작품상'이 아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영화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로 돼 있기는 하지만, 미국 영화사인 브래드 피트의 '플랜B'가 제작했고, 미국 국적 감독이 미국에서 연출한 영화인데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나리는 아메리칸드림을 좇는 이민자 가정에 관한 영화로, 미국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에서 촬영하고, 미국 회사가 투자해 만들었음에도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며 "외국어영화 소동이 없다면 골든글로브가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기생충'과 함께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 '페어웰(2019)'의 중국계 미국인 감독 룰루왕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나는 올해 미나리만큼 미국적인 영화를 보지 못했다"며 "미국인을 오직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구시대적인 규칙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내 온라인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서 골든글로브의 결정에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이들은 대사 대부분이 프랑스어·독일어였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rious Basterds·2009·이하 바스터즈)'이 2010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상이 아닌,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점을 들어 "일관성이 없어 이해가 안 된다", "유럽어, 아시아어 차별에 주연이 백인이 아닌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 "2021년에 아직도 이러고 있는 게 놀랍다"고 지적했다.
이에 연합뉴스는 골든글로브상 규정을 살펴보고,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는 게 타당한지, 바스터즈 전례에 비춰 골든글로브가 미나리를 차별했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을 따져봤다.
◇골든글로브 규정상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최우수작품상의 영어 비중 요건 미충족
우선 골든글로브상을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의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규정을 살펴봤다.
협회는 홈페이지에서 "전체 대사의 최소 51%가 영어가 아니면서, 골든글로브 시상식 전 12월 말로부터 직전 14개월(이번은 예외적으로 15개월) 사이에 제작국가에서 처음 개봉된 장편(최소 70분 이상)만 해당한다"고 수상 자격을 소개했다.
협회는 또한 골든글로브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은 오직 '영어' 영화에 한한다고 명시했다.
협회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수상 요건 안내 문서에는 "영어 대사가 50% 이상인 경우에만 드라마 부문, 뮤지컬 혹은 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 자격이 있다"고 나와 있다.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작품상은 드라마, 뮤지컬 혹은 코미디, 애니메이션, 외국어영화상 부문으로 나뉘는데 이중 드라마, 뮤지컬 혹은 코미디 부문은 대사 50% 이상이 영어여야만 하는 것이다.
미나리 제작진은 이러한 규정 때문에 골든글로브에 출품할 때부터 '선택권'이 없었음을 밝혔다.
미나리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은 미국 잡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와의 인터뷰에서 "언어 관련 HFPA 규정상 미나리는 오직 최우수 외국어 영화에만 자격 조건이 맞아 이 규정에 따라 영화를 출품했다"며 "이 문제에 관한 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대사의 대부분이 한국어인 영화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 후보가 된 것은 골든글로브 규정에 부합하는 일이다.
미국인과 미국사회에 대한 영화이며, 미국인이 만들고 출연한 영화임에도 영어 이외 언어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최우수작품상 문턱에도 오를 수 없도록 한 골든글로브의 규정 자체에 문제 소지가 있지만 일단 미나리는 규정대로 외국어영화로 분류된 것이다.
◇ 독·불어 70%인 美영화 '바스터즈'는 외국어아닌 '최우수 작품상' 후보…규정 뛰어넘은 '특혜'로 봐야
그렇다면 2010년 골든글로브에서 바스터즈가 드라마 부문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특혜'로 볼 수 있을까?
HFPA 규정에 근거해 비춰 '그렇다'고 할 수 있다.
HFPA는 이 부문 작품상을 받기 위해서는 대사의 50%가 영어여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미국 영화 평점 전문사이트 로튼토마토에 따르면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의 영어 대사는 전체의 30%가 채 되지 않는다.
온라인 영화 정보 사이트 아이엠디비(IMDB)도 바스터즈에 대해 "영화의 약 30%만이 영어고 프랑스어나 독일어가 대부분이며 이탈리아어도 약간 나온다"면서 "할리우드 작품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한다.
미국 영화·음악전문 잡지 '페이스트메거진(PasteMegazine)'의 영화 담당 편집자 제이컵 올러도 '골든글로브가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했다'는 기사를 트위터 계정에서 공유하면서 "이게 인종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작품상 후보였던 바스터즈는 오직 30%만이 영어"라고 적었다.
결국 미국 국적 감독이 미국 제작사 지원을 받아 메가폰을 잡았고, 대사 대부분이 영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나리와 다를 게 없는 바스터즈가 최우수 작품상 드라마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은 규정을 뛰어넘는 '특혜'였던 셈이다.
※이 기사는 아이템 선정 및 취재 과정에서 신유라 시민팩트체커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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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드라마부문 최우수작품상은 '영어 과반' 요건…두 작품에 다른 잣대 김수진 기자·이율립 인턴기자 = 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3일(현지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는 소식은 한국 영화팬들에게 '낭보'인 동시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윤여정씨가 출연한 영화가 미국의 권위있는 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은 국내 영화팬들에게 기쁜 소식이지만 이 영화가 '최우수작품상'이 아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영화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로 돼 있기는 하지만, 미국 영화사인 브래드 피트의 '플랜B'가 제작했고, 미국 국적 감독이 미국에서 연출한 영화인데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나리는 아메리칸드림을 좇는 이민자 가정에 관한 영화로, 미국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에서 촬영하고, 미국 회사가 투자해 만들었음에도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며 "외국어영화 소동이 없다면 골든글로브가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기생충'과 함께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 '페어웰(2019)'의 중국계 미국인 감독 룰루왕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나는 올해 미나리만큼 미국적인 영화를 보지 못했다"며 "미국인을 오직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구시대적인 규칙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내 온라인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서 골든글로브의 결정에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이들은 대사 대부분이 프랑스어·독일어였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rious Basterds·2009·이하 바스터즈)'이 2010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상이 아닌,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점을 들어 "일관성이 없어 이해가 안 된다", "유럽어, 아시아어 차별에 주연이 백인이 아닌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 "2021년에 아직도 이러고 있는 게 놀랍다"고 지적했다.
이에 연합뉴스는 골든글로브상 규정을 살펴보고,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는 게 타당한지, 바스터즈 전례에 비춰 골든글로브가 미나리를 차별했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을 따져봤다.
◇골든글로브 규정상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최우수작품상의 영어 비중 요건 미충족
우선 골든글로브상을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의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규정을 살펴봤다.
협회는 홈페이지에서 "전체 대사의 최소 51%가 영어가 아니면서, 골든글로브 시상식 전 12월 말로부터 직전 14개월(이번은 예외적으로 15개월) 사이에 제작국가에서 처음 개봉된 장편(최소 70분 이상)만 해당한다"고 수상 자격을 소개했다.
협회는 또한 골든글로브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은 오직 '영어' 영화에 한한다고 명시했다.
협회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수상 요건 안내 문서에는 "영어 대사가 50% 이상인 경우에만 드라마 부문, 뮤지컬 혹은 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 자격이 있다"고 나와 있다.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작품상은 드라마, 뮤지컬 혹은 코미디, 애니메이션, 외국어영화상 부문으로 나뉘는데 이중 드라마, 뮤지컬 혹은 코미디 부문은 대사 50% 이상이 영어여야만 하는 것이다.
미나리 제작진은 이러한 규정 때문에 골든글로브에 출품할 때부터 '선택권'이 없었음을 밝혔다.
미나리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은 미국 잡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와의 인터뷰에서 "언어 관련 HFPA 규정상 미나리는 오직 최우수 외국어 영화에만 자격 조건이 맞아 이 규정에 따라 영화를 출품했다"며 "이 문제에 관한 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대사의 대부분이 한국어인 영화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 후보가 된 것은 골든글로브 규정에 부합하는 일이다.
미국인과 미국사회에 대한 영화이며, 미국인이 만들고 출연한 영화임에도 영어 이외 언어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최우수작품상 문턱에도 오를 수 없도록 한 골든글로브의 규정 자체에 문제 소지가 있지만 일단 미나리는 규정대로 외국어영화로 분류된 것이다.
◇ 독·불어 70%인 美영화 '바스터즈'는 외국어아닌 '최우수 작품상' 후보…규정 뛰어넘은 '특혜'로 봐야
그렇다면 2010년 골든글로브에서 바스터즈가 드라마 부문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특혜'로 볼 수 있을까?
HFPA 규정에 근거해 비춰 '그렇다'고 할 수 있다.
HFPA는 이 부문 작품상을 받기 위해서는 대사의 50%가 영어여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미국 영화 평점 전문사이트 로튼토마토에 따르면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의 영어 대사는 전체의 30%가 채 되지 않는다.
온라인 영화 정보 사이트 아이엠디비(IMDB)도 바스터즈에 대해 "영화의 약 30%만이 영어고 프랑스어나 독일어가 대부분이며 이탈리아어도 약간 나온다"면서 "할리우드 작품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한다.
미국 영화·음악전문 잡지 '페이스트메거진(PasteMegazine)'의 영화 담당 편집자 제이컵 올러도 '골든글로브가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했다'는 기사를 트위터 계정에서 공유하면서 "이게 인종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작품상 후보였던 바스터즈는 오직 30%만이 영어"라고 적었다.
결국 미국 국적 감독이 미국 제작사 지원을 받아 메가폰을 잡았고, 대사 대부분이 영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나리와 다를 게 없는 바스터즈가 최우수 작품상 드라마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은 규정을 뛰어넘는 '특혜'였던 셈이다.
※이 기사는 아이템 선정 및 취재 과정에서 신유라 시민팩트체커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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