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노래할 때면 스무 살 무렵이 생각나요.
가수 꿈을 품고 고향인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에서 현금 570위안(약 10만 원)을 쥐고 베이징(北京)으로 향하던 기차 안이나, 관객 한두 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절박한 현실에 쓴 입맛을 다셨던 그 시절이요.
그때 겪었던 가슴 시린 경험이 지금 한(恨)으로 승화된 게 아닐까요.
" 몇 년째 이어지는 트로트 열풍 속에서 또 한 명의 스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KBS '트롯전국체전'에 출전해 한 서린 목소리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며 이목을 집중시킨 조선족 출신 가수 김윤길(42) 씨다.
얼마 전 5라운드 경연 녹화를 마친 김 씨는 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언젠가 누군가가 알아주리라는 믿음과 그때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절실함으로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며 "지금은 전성기가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신인이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2013년 중국 저장(浙江)위성TV에서 방영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보이스 오브 차이나' 시즌2에 출전해 이름을 알렸다.
그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심사위원의 호평을 받으며 결승전에 올랐다.
2019년과 지난해에는 잇달아 국내 유명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비추며 한국 시청자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허스키한 목소리 덕에 '북경 임재범'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스타로서 발돋움하기까지 10년이 넘는 무명 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는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100번도 더 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무대에 설 때마다 현실의 고단함은 잠시나마 지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 기뻤다"며 "꾸준히 하다 보니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고 기회도 주어지더라"고 떠올렸다.
인고의 시절은 현재의 거름이 됐다.
"인생에 굴곡이 많을수록 자기만의 색깔이 생긴다고 믿어요.
40여 년 인생을 반추하면 '어떻게 견뎠나' 싶네요.
2000년 무렵 고향을 떠나면서 가수로 성공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몇 번이고 되새김질 했을 때가 그랬죠. 여러 대회에서 걱정이 들 때마다 그 세월을 믿었어요.
"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서 한이 느껴진다는 평이 많은 것도 이 덕분이라고 본다.
과거 오디션에서 불렀던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는 그가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설거지하면서 흥얼거린 곡이고, 이번 경연대회에서 부른 '눈물젖은 두만강'은 할아버지의 애창곡이다.
그는 "고향 집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면 두만강이 보인다"며 "어릴 적에는 수영장이자 썰매장이 된 놀이터였고, 청년 시절에는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불안한 맘을 달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릴 때는 그저 신나고 가벼운 곡인 줄만 알았으나 나이가 드니까 노랫말에 애환이 보이더라"며 "한을 담아 불렀고, 실제로 몇 번이나 울컥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마이크를 쥔 모습에 누구보다 기뻐했던 이들은 김 씨의 가족이다.
고향의 부모님과 친척들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했고, 경기도 평택에서 함께 사는 아내와 5살 아들은 그가 TV에 나올 때마다 즐거워했다.
그는 "밖에서 힘들어도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게 좋다"며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들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배운 점도 있다.
무대에서 힘빼기다.
그는 "과거에는 절박한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으나 이제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연습한 만큼만 하자는 마음"이라며 "사람이 익어간다는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더 열심히 해서 조선족에 남아있는 부정적인 인식 대신 좋은 이미지가 더 많이 생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