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도움 되고 싶었는데 충격…의료진 존중받아야"
[코로나19 의료진] ②진료소 난동 피해 간호사 트라우마
"열심히 봉사했을 뿐인데 왜 그런 일까지 당해야 하나 싶죠."
10년차 간호사 배모(31)씨는 지난해 12월 16일 봉변당한 일을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그날 배씨는 서울 강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여느 때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하고 있었다.

검사 중 갑자기 한 60대 남성 수검자가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의료진과 수검자를 분리하는 아크릴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기도 했다.

콧속에 면봉을 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검사 방식이 아프다는 이유였다.

경찰이 출동해 이 남성을 체포했지만, 배씨의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손이 계속 떨려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고, 귀가 후에도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다음날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갔다.

며칠 입원해 안정을 취한 뒤에야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경찰은 가해 남성을 조사한 뒤 의료법 위반과 모욕 혐의로 지난 11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남성에 대해 구속영장도 청구했으나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등 이유로 기각했다.

배씨는 25일 "그 남성 나이대로 보이는 중장년 남성들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날 것 같다"며 "국민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도리어 이런 일을 겪으니 더욱 충격이 컸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몸담았던 배씨는 신천지 집단감염이 확산하던 작년 3월 초 대구로 향했다.

5월로 예정됐던 결혼식도 미루고 약 두 달간 생활치료센터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이후 경기도 안산의 생활치료센터에서 넉 달여간 근무하면서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 등의 치료를 도왔다.

[코로나19 의료진] ②진료소 난동 피해 간호사 트라우마
줄곧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 있다 보니 누적된 피로에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다.

10월 중순 미뤘던 결혼식을 올린 배씨는 사흘간 짧은 신혼여행 뒤 강남구보건소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번 사건을 겪었다.

배씨는 "격리 수용돼 답답해하는 환자에게서 욕설을 들은 적은 있지만, 물리적 폭행 위협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며 "사건 당일에도 수백명을 혼자 검사하느라 가뜩이나 지쳐 있었는데 더 힘이 들었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자신을 질책한 보건소 측의 태도에도 서운함을 느꼈다고 한다.

"`왜 굳이 일을 크게 만드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한 공무원은 '예전에 불법 포장마차 단속을 나갔다가 도마에 칼을 꽂아 두고 항의하는 사람도 만났지만 나는 그냥 잘 넘겼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고도 했어요.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껴 배신감이 들고 슬펐어요.

"
배씨는 의료지원 업무를 이어가고 싶었으나 보건소 측이 이달 22일까지였던 근로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건소 관계자는 "의료지원 간호사 계약 연장 여부는 서울시가 결정하는 것이지 우리는 권한이 없다"며 "해당 사건에 대해 배씨에게 어떤 불이익을 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배씨는 방역당국과 국민이 코로나 현장의 의료진을 더욱 존중하고 배려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넷에서는 다들 의료진한테 `고생하십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짜증내고 함부로 대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는 의료진이나 그 가족과 접촉만 하면 바이러스가 옮는 것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는데 코로나 종식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