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리에겐 '벡터' 리더십이 필요하다
2010년대 LG전자 사내 행사 때마다 임직원이 다 같이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가수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 ‘톱3 아무나 하나’라고 가사를 붙인 곡이었다. LG전자 임직원은 세계 가전 기업 3위 안에 들겠다는 열망을 그렇게 공유했다. “톱3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지난해 LG전자는 미국 월풀을 제치고 세계 1위 가전업체로 올라섰다. 비결은 복잡하지 않다. 모든 임직원이 ‘세계 1위’라는 열망을 가진 결과였다. 100년간 변화가 거의 없던 가전업계에서 LG전자는 의류관리기 ‘LG 스타일러’ 등 이전에는 없던 신가전과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으며 시장을 개척했다. 조직원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리더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리더십 없는 조직은 크기만 있는 물리량인 ‘스칼라’와 같다. 힘은 있으나 방향이 없는 2차원적인 조직이다. 리더는 여기서 벡터를 설정해 조직을 3차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힘이 같은 a, b, c, d 네 명이 각기 동, 서, 남, 북으로 움직인다고 가정해보자. 이들 에너지의 총합은 0이다. 하지만 a~d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에너지는 4배가 된다. 리더가 방향만 제대로 잡아주면 조직원 간 시너지를 일으키고, 몇 배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벡터 리더십’은 특히 힘을 발휘한다. 예상치 못한 변화나 위기를 마주했을 때 조직이 대처하는 속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방향이 제대로 설정된 조직만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 기업들은 새로 바뀐 게임의 룰을 재빨리 숙지하고, 기회요소를 찾아 먼저 이동해야 하는 시기다.

근본적인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역과 분야를 막론하고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기간 비대면 경제가 성장하면서 디지털 인프라가 빠르게 갖춰졌다. 소비자들은 이미 온라인의 맛을 봤다. 비대면 경제의 편리함을 경험한 소비자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된 뒤에도 그것을 누리려고 할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회로 향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연구개발(R&D)이 그래서 중요하다. 기술뿐 아니라 인구구조, 메가 트렌드, 소비자 행동 등 방대한 분야 연구에 자금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5% 개선은 불가능해도 30% 개선은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기존의 것을 살짝 바꾸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

벡터 리더십은 사회와 국가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리더는 사회 각 구성원들이 분열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사회가 통합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이 있다면 발전은 저절로 될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방향을 역행하는 정책도 보인다. 국가주도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는 규제가 대표적이다. 특히 미래 경쟁력의 핵심인 R&D 역량을 키우기에는 현재 한국의 노동환경에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글로벌 경제에서 한국과 치열한 속도경쟁을 벌이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기업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혁신하는 데 ‘주 52시간’이라는 시간 제한에 걸려버렸다. 많은 분야에서 한국이 앞서나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원한 1등’은 없다. 우리 기업들이 고지를 선점했어도 이를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과거 외환위기는 한국 기업들이 선진경영을 펼치는 변곡점이기도 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위주로 하던 국내 기업들이 브랜드 가치에 눈을 뜨고, 독자적인 상품과 브랜드로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보게 된 계기가 됐다. 코로나19를 전환기 삼아 한국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을 통해 새로운 경쟁의 주도권을 차지하길 바란다. 얼음 밑에서도 물은 흐르고, 봄은 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