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치사 양형 기준 살인사건 절반 수준인 징역 4∼7년에 불과
"사회적 이목 끈 사건엔 중형, 나머지 사건은 경미한 처벌에 끝나"
계모와 친부의 잔혹한 학대 끝에 숨을 거둔 신원영(당시 7세) 군은 당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미취학 아동'이었다.
초등학교 예비신입생은 1∼2월 예비소집에 참석해 입학하는 학교에 대한 정보를 안내받는데, 원영 군은 2016년 1월 7일 1차 예비소집에 불참했다.
원영 군은 그로부터 20여 일 뒤인 2월 1일 계모의 락스와 찬물 세례를 견디다 못해 난방도 되지 않는 화장실에 방치된 채 결국 숨졌다.
원영 군의 사망사실은 한 달 뒤 새 학기가 시작했는데도 출석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학교 측의 신고로 뒤늦게 알려졌다.
예비소집 불참 아동을 좀 더 세심하게 살폈다면 끔찍한 결과는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일었고, 교육 당국은 그제야 예비소집 대상인 미취학아동에 대한 소재 파악 및 안전 확인을 강화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섰다.
교육부는 '제2의 원영이를 막자'며 2017년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의 실태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취학 전 영유아까지 아우르는 위기 아동 조기 발견 시스템인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렇듯 원영 군은 우리 사회에 많은 것들이 바로잡혀야 함을 일러주고 갔지만, 아동 학대 관리체계는 예산 및 인프라 부족으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낸 '2020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를 위한 제언'에 따르면 아동학대의심신고는 2019년 3만8천380건으로 2015년 1만6천651건으로 4년 새 2.3배 늘었다.
이에 비해 아동학대 관련 정부 예산은 2015년 252억여원에서 2020년 296억여원으로 17% 증가하는 데 그쳤다.
김승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은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생기면 짧게 관심이 쏠렸다가 사그라든다"며 "그러다 보니 제도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인력이나 예산이 후순위로 밀린다"고 말했다.
부족한 재원은 학대 관리 현장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의 사례관리 담당자 한 사람이 맡은 사례 수는 평균 70여 건(2019년 기준)에 이른다.
이는 미국아동복지연맹이 권장하는 1인당 17건의 4배를 초과한다.
학대를 경험한 아동 10명 중 1명꼴로 재학대 당하고 있어, 꾸준하고 세심한 사례관리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인력 구조로는 불가능한 여건인 셈이다.
아보전과 '쉼터(가정과 분리된 학대 아동을 돌보는 시설)' 등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다.
2019년 기준 아보전이 설치된 시·군·구는 전국 229곳 중 67곳(29.2%)뿐이다.
'쉼터'도 전국에 75곳뿐이다.
일반적으로 '쉼터' 직원들은 보조 인력도 없이 한 명씩 교대로 근무하며 아이들의 식사까지 직접 조리하고 있다.
이 같은 열악한 근무 여건은 기존 인력의 이탈로 이어지고, 전문 인력 양성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학대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뒷수습하기에만 급급하고, 정작 위험 징후를 미리 포착해 학대를 예방하는 것은 벅찬 게 현실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김미숙 한국아동복지학회 감사는 "현재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 관리체계는 형식은 있지만, 내용은 부실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며 "충분한 예산과 인력 투입으로 예방 차원의 사전 관리와 사후 대처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더 강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논의도 수년째 반복되고만 있다.
평택 원영이 사건 가해자인 계모와 친부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작위 살인죄가 인정돼 각각 징역 27년, 17년이 확정돼, 아동학대치사죄로 재판을 받은 다른 가해자들보다 비교적 무거운 형을 받았다.
의붓딸을 때려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리는 등 학대해 숨지게 한 울산 서현이 사건의 계모는 항소심에서 살인죄가 인정되면서 형량이 3년 가중, 징역 18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됐다.
입양한 6살짜리 딸을 묶어놓은 뒤 폭행하고, 화장실과 베란다 등에 감금하는 등 학대해 사망케 한 포천 입양딸 살해사건의 양모와 양부에게도 살인죄가 적용돼 각각 무기징역, 징역 25년의 확정 판결이 났다.
그러나 모든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가해자들이 이들처럼 살인죄로 심판받기란 쉽지 않다.
법원의 판단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이다.
20대 부부가 첫돌도 지나지 않은 자녀 2명을 차례로 숨지게 한 이른바 '원주 3남매 사건'도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작년 8월 1심 재판부는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특성상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자백이 있어도 여러 증거가 뒷받침돼야 유죄를 끌어낼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공소 유지가 가능한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아동학대치사 혐의의 양형기준 자체를 높이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살인은 징역 10∼16년, 아동학대치사는 징역 4∼7년으로 양형이 거의 2배 이상 차이 난다.
원영군 사건과 같이 사회적 관심을 끈 일부 사건의 경우에나 가해자가 엄벌을 받을 뿐, 대부분의 아동학대치사 사건은 경미한 처벌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게 지금의 구조적 현실인 셈이다.
경찰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미성년자 성 착취 관련 형량도 징역 5년으로 시작한다"면서 "어린 생명을 앗은 아동학대치사의 양형이 너무 낮다"고 말했다.
수도권 법원의 현직 판사는 "과거 '도가니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양형이 정상화했듯이 이번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치사 양형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