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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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코로나 이후 '이익공유제' 주요 참여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딜레마에 빠졌다. 코로나 이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배당을 자제하고 이익금을 유보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와 정면으로 배치하는 탓이다. 정부의 '팔 비틀기식 정책'이 반복되면서 국내 금융 지주들의 주주 가치 훼손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익 아껴두라는 건가, 나누란 건가"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대부분의 은행들은 정치권에서 거론 중인 '이익공유제'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19일 "코로나 19 상황에서 가장 이익을 크게 보고 있는 업종은 금융업"이라고 은행을 이익공유제 참여 대상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당 일각에서는 이익공유의 방식으로 △이자 수취 중단 또는 금리 하향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압류 유예 △기금 조성 △사회책임채권 발행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은행권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배당을 줄이고 충당금을 더 쌓아 코로나 위기를 대비하라는 기조가 강했기 때문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 19 이후 경제상황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를 해봤더니 L자형(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부 금융지주마저 통과하지 못했다"고 배당을 줄일 것을 주문했다. 이같은 권고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25~27%였던 4대 지주의 배당 성향은 올해 22~23%로 내릴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금융지주들은 지난해 코로나 위기에도 대부분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4대 금융 지주의 3분기 누적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5% 올랐다. 다만 은행 보다는 증권, 카드 등 타 업권에서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낸 덕이 크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은 10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12조1000억원) 대비 1조8000억원(15%) 줄었다. 은행은 특히 원금·이자 유예조치가 올해까지 연장돼 부실에 대한 우려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이익을 나누라'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그동안의 기조와 배척된다는 게 은행권의 얘기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언제는 수익 본 것을 아껴둬서 위기에 대비하라더니, 이제는 이익을 나누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형법상 배임죄 가능성 있어"

은행들은 이익공유제가 실제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출 규제가 강해졌고, 금감원장이 은행 배당을 줄이라고 직접 압박하는 등 전례가 있는 만큼, 은행 수익을 일부분 나눠달라는 추가적인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은행들이 우려하는 건 형법상의 배임죄다. 은행의 소유주인 주주들의 수익을 나누라는 것 자체가 주주의 이익을 저해하고 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이 높다는 의미다. 한 은행 관계자는 "여권에서 언급되는 이익공유제의 골자는 은행이 올린 수익 중 일부를 제 3자에게 기부 내지 제공하라는 의미"이라며 "은행이 공익적 역할도 중요하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법상 회사라는 점, 이익공유제로 은행이 얻을 효과가 적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노조조차 우려한 이익공유제

은행권 노조에서조차 연이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주주에게 갈 몫을 반강제적으로 줄이고, 남은 재원을 사회 환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자본주의 논리와도 배치되는 탓이다. 정부가 해야 할 취약계층 지원을 손쉽게 민간 기업에 떠넘기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4대 은행의 한 노조위원장은 "이익공유제에 참여하면 은행 순이익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직원은 물론 경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해외 자본 유치 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 사안을 우선 던져놓고 정치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은행 노조 간부도 "이익이 줄면 급여나 복지 개선이 어려워지고, 우리사주를 가지고 있는 임직원들은 주주로서도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노조는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동자 연대에는 공감하지만 세부안이 나오지 않아 입장을 내놓기는 어렵다"며 "은행권은 노사 공동 출연 재단을 통해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고, 사내 근로 복지기금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시중은행 간부는 "그동안 이자 감면, 착한 임대인 운동, 한국형 뉴딜 등 정부가 새로운 사업을 벌일 때마다 은행이 여지 없이 동원돼왔다"며 "이런 와중에 코로나 위기에 어떻게 선제 대응하라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정소람/김대훈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