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에는 한 모녀가 산다.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사기까지 당해 위기에 몰렸던 오혜자는 겨우 구한 돈으로 이 목욕탕의 세신사, 그러니까 속칭 '때밀이' 자리를 샀다.
그때부터 오혜자는 어린 딸인 '나'를 여탕에서 키운다.
오혜자는 몸을 써서 다른 여자들의 몸을 깨끗하게 씻겨주는 일로 생계를 잇는다.
무용가로 진로를 택한 '나'는 몸을 통해 아름다움을 구현함으로써 목욕탕 생활을 벗어나려 애쓴다.
대학 시절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나'는 괴롭지만, 자신이 엄마 오혜자의 유일한 희망임을 알기에 무용을 포기할 수 없다.
지난해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신예 김유담의 신작 경장편 '이완의 자세'(창비 펴냄)에 나오는 모녀 이야기다.
어찌 보면 이른바 '루저'의 삶을 다루는 클리셰일 수도 있지만, 젊은 작가는 연륜이 무색할 만큼 여유 있는 시각으로 작품을 새롭게 채색한다.
곳곳에서 슬픔을 골계미로 승화하는 넉살도 드러난다.
여탕을 무대로 한 이 소설은 모녀의 '몸'을 중심으로 육체에 관한 솔직한 담론을 풀어낸다.
등장인물들은 알몸을 내놓고 각자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공감하고 연대한다.
동네 '회장님'은 암으로 한쪽 유방을 절제했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여탕을 드나들고, 이런 당당함은 다양한 수술 전력이 있는 다른 여성들을 다시 대중탕으로 불러들여 건강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나'에게 처음 무용을 가르친 윤 원장은 비혼주의자이자 자유 연애론자로, 춤을 통해 경직된 '몸'을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꿈을 이루려 발버둥 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열심히 달려 보지만 주인공이 되는 건 어렵다.
'나'도 그렇지만 목욕탕 사장 아들 만수도 이 사실을 안다.
야구 유망주였던 만수는 부상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김유담은 작가의 말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심경을 다루고 싶었다고 했다.
"이루지 못한 꿈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
그리고 그는 아직 꿈을 완성하지 못했어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경직된 몸을 뜨거운 탕에서 이완하듯 어려움에 부딪혀도 좌절하지 말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