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큐리 13' 여성들의 실화 담은 타냐 리 스톤의 책 '우주를 꿈꾼 여성들'

1999년 7월, 한 여성이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사령관 자리에 앉아 세계적 이목을 끌었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우주여행자가 된 주인공은 아일린 콜린스(65). 미국 여성이 우주 비행사로 도전한 지 38년 만에 이뤄낸 성취였다.

옛 소련은 이보다 훨씬 빨라 발렌티나 테레시코바(84)가 1963년 6월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총 2일 22시간 50분간 세계 여성 최초로 우주비행을 했다.

미국 여성이 우주의 꿈을 실현키 위해 도전에 나선 건 1961년이었다.

그 선구적 인물이 제리 코브(1931~2019). 그녀는 여성 비행기 조종사로서 7천 시간의 비행기록을 달성했는데, 이는 당시 남녀를 통틀어 최고의 대기록이었다.

하지만 우주의 꿈을 성취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여성이 우주비행사가 될 수는 없다는 통념 때문이었다.

우주 비행사에게 필요한 자질은 뭘까? 그건 우수한 비행 실력과 강인한 체력, 뛰어난 판단력과 스트레스 적응력,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용기다.

그런데 나사(NASA·미국항공우주국)가 창립됐을 때 불문율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우주비행사는 백인 남성이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최정예 남성 조종사들보다 더 우주 비행에 적합한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 여성은 제리 코브처럼 능력과 용기를 스스로 증명해 보였으나 편견과 질투 등에 가로막혀 우주로 날아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훗날 다른 여성들이 제트기를 타고 우주를 비행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타냐 리 스톤의 저서 '우주를 꿈꾼 여성들'은 글과 사진 등을 통해 우주 경쟁이 막 시작된 1960년대 초 미국으로 안내한다.

변화를 꺼리는 나사와 워싱턴 정가의 권력자들, 여성에 대한 통념을 보여주는 언론 등으로 우주시대의 여명에 가려진 여성들의 도전과 분투를 보여준다.

소련과 미국이 본격적인 우주 경쟁에 들어간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였다.

소련이 1957년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자 미국은 이를 따라잡기 위해 이듬해인 1958년 나사를 설립하고 유인 우주 비행을 목표로 한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가려 뽑은 일곱 남성이 '머큐리 세븐(Mercury 7)'이라 불리는 미국의 1세대 우주비행사들이다.

이들은 선발된 순간부터 미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환호 속에 우주로 날아올랐다.

그 영광의 무대 뒤에서 이들과 같은 꿈을 꾸는 여성들이 있었다.

우주 비행사의 정숙한 아내가 아니라 우주비행의 주인공이 되려 한 여성들. 바로 '머큐리 서틴(Mercury 13)'으로, 제리 코브 등 13명의 여성 비행사들이었다.

물론 이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

이들 여성이 나사의 머큐리 계획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머큐리 세븐 남성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랑스럽게 훈련하고 비행하는 동안, 테스트에 자원한 이들 머큐리 서틴 여성은 여성의 본분을 망각하지 말라는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98년 나사는 또다시 제리 코브를 외면해 머큐리 서틴 여성들은 결국 우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들 여성이 우주 비행사에 도전을 시작했던 1960년대 초반은 미국에서도 성차별의 시대였다.

여성은 남성의 서명 없이는 차를 빌릴 수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여자 프로스포츠 팀은 하나도 없었고, 여자가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전달하는 기자 또한 될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아일린 콜린스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를 향해 날아갔을 때 제리 코브의 심회를 묘사한 부분이 더욱 눈길을 끈다.

"제리 코브는 발사대가 우주선에서 분리돼 맑은 밤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일린 콜린스는 첫 우주비행을 제리 코브의 금색 머리핀과 함께 떠났다.

그 머리핀에는 제리 코브의 비행기와 삶을 상징하는 콜롬비아의 어떤 새가 그려져 있었다.

아일린 콜린스는 지상에 머물러야 했던 제리 코브의 바람과 꿈을 함께 싣고 우주로 솟아올랐다.

"
이 같은 꿈과 노력에 힘입어 여성들의 비행도 나날이 발전했다.

2006년 봄에는 니콜 맬러카우스키 공군 대위가 여성 최초로 공군 특수비행팀 '선더버드'의 조종사가 돼 하늘로 날아올랐고, 이듬해에는 우주 비행사 페기 윗슨이 최초의 국제우주정거장 사령관으로 광활한 우주를 무대로 활동에 들어갔다.

저자는 "2007년 6월, 미 하원은 여성 우주 비행사들에 앞서 새로운 길을 개척했던 13명의 여성이 이룬 업을 기리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면서 "'적합한 자질'을 갖춘 여성에게 '잘못된 시대'와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머큐리 서틴'이 더 많은 여성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기 바란다"고 말한다.

김충선 옮김. 돌베개. 216쪽. 1만3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