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넘게 이어져 온 구세군 빨간 냄비,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보신각 제야의 타종행사도 없이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1953년을 시작으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67년을 이어 온 행사가 코로나19의 혼돈 속에 멈춰 섰다.

타종 행사장 주변으로 모여든 새해맞이 인파를 막기 위한 서울시의 고육지책이다.

2000년대에 두어 번 현장을 취재한 필자의 경험에도 적절한 예방책이었다는 생각이다.

해마다 12월 31일 자정이면 보신각 앞에는 연인, 친구, 가족 단위로 모인 시민들로 빽빽하다 못해 사람이 움직일 한 치의 틈도 내주지 않았다.

그 속에서 보신각 타종 소리에 맞춰 폭죽을 터뜨리고 환호성을 지르는 시민들을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종소리는 1일 새벽 0시 온라인을 통해 전국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일시적인 현상이겠지만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현실 속에서 사라진 게 보신각 타종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3일 치러진 수능 시험장 풍경 속에서 수험생들을 응원하던 후배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매년 수능일 아침, 시험장 문 앞에 모여든 재학생 후배들은 형형색색의 플래카드를 들고, 함성과 함께 교가와 응원가를 불렀다.

그들의 시끌벅적한 응원은 수능 한파에 움츠린 수험생들의 긴장감을 덜어주는 따스한 손난로였다.

하지만 지난해는 그 모든 것이 금지됐다.

작년에 선배들을 향해 힘내라고 목청껏 소리쳤을지도 모를 한 수험생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신문 속 사진 읽기] 이어져야 할 아날로그 풍경
북유럽에서 루돌프 사슴을 타고 온 산타 할아버지가 2주간의 자가 격리 때문에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못 전달하고 해를 넘겼다는 우스갯소리마저도 씁쓸했던 지난 연말. 거리에 인파는 사라지고 쓸쓸한 정적만이 흘러넘쳤다.

코로나 영향으로 소외된 불우이웃은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인적 드문 거리에서의 공익 자선단체 모금 활동도 여의치 않았다.

그런 가운데 구세군은 지난해 12월 어김없이 빨간 냄비를 거리 한복판에 세웠다.

[신문 속 사진 읽기] 이어져야 할 아날로그 풍경
빨간색 자선냄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됐다.

1891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 오던 샌프란시스코에서 1천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는데, 한 구세군 사관이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냄비를 끓게 합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수프 끓이는 큰 냄비에 기부를 받은 것이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다.

국내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구세군한국군국(현재 구세군 대한본영)에 의해 서울에 처음으로 자선냄비가 설치됐다.

구세군 냄비는 대표적인 세밑 스케치 사진이다.

대부분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풍경이다.

거리에서 구세군이 흔드는 작은 종과 그 앞에 놓인 빨간 냄비, 특히나 절반으로 접어 냄비에 집어넣는 지폐는 플라스틱 카드와 각종 전자, 사이버 화폐 등에 밀려나고 있는 아날로그적 소품이 아닌가.

그렇게 90년을 넘게 이어져 온 거리의 모금 활동도 결국은 코로나 한파에 부딪혀 온라인 도구를 이용하게 됐다.

구세군도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QR코드, 후불교통 카드 등을 활용한 비대면 디지털 모금을 도입했다고 한다.

언젠가는 마스코트 같은 빨간 냄비와 종소리도 온라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싶다.

그럼에도 빨간 냄비와 종소리가 연말 거리를 따뜻하게 채우는 거리의 모금 활동은 백 년을 넘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빨간 냄비를 끓여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에 그 온기가 전달되면 좋겠다.

썰렁한 거리에서 외면받는 구세군 냄비 사진은 이번 겨울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져본다.

[신문 속 사진 읽기] 이어져야 할 아날로그 풍경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