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인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내리기 시작한 눈은 2시간 넘게 이어지며 도심을 하얗게 뒤덮었다.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 한파 속에서 내린 눈은 녹지 않고 그대로 쌓였고, 인도를 걷는 시민들도, 도로 위의 차량도 거북이걸음을 이어갔다.
퇴근길에 갑작스럽게 머리와 옷을 적실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리면서 우산 없어 귀가하는 시민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겉옷에 달린 모자를 쓰거나 가방으로 머리만 가린 채 총총걸음으로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등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하이힐을 신은 한 젊은 여성은 팔을 살짝 벌려 균형을 잡으면서 발끝을 내려다보며 조심조심 걸었고, 차량을 갖고 나왔던 시민은 눈밭을 헤치고 귀가할 일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종로소방서 인근 이면도로에 주차했던 정지훈(38)씨는 플라스틱 파일로 유리와 사이드미러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귀갓길 걱정을 했다.
정씨는 "연초에 계속 바쁘다 보니 일기예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가 큰일이 났다"며 "경기 광명까지 차를 몰고 가야 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내일은 차를 두고 나와야겠다"고 말했다.
지인과 함께 광화문역 근처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온 강태호(34)씨도 "차를 밖에 세워 뒀는데 은평구까지 귀가할 일이 걱정"이라고 했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를 지나는 버스와 승용차들은 시속 30㎞가량으로 서행했다.
일부 차량은 비상등을 켜고 엉금엉금 이동하기도 했다.
반대로 지하철을 이용한 시민들은 오랜만에 서울에 눈이 쌓인 풍경이 `반갑다'고 환하게 웃었다.
경복궁 인근에 있는 회사에서 퇴근해 광화문역으로 향하던 3년차 회사원 엄주연(29)씨는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 살짝 불편하긴 하지만, 펑펑 내리는 눈을 보니 낭만이 느껴진다"고 했다.
종로구 옥인동에서 친구를 만나 장을 본 뒤 지하철로 귀가한다는 주부 이모(65)씨도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온 게 몇 년 만인 것 같은데, 세상을 모두 깨끗하게 해 주는 것 같아 반갑다"고 말했다.
이날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에는 오후 9시 기준 3.8㎝의 눈이 쌓였다.
서울과 인천, 경기 서부를 비롯해 충남 서해안과 호남 등에는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다.
대설주의보는 24시간 동안 눈이 5㎝ 이상 쌓일 것으로 예측될 때 내려진다.
이번 눈은 밤늦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