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일 '데드라인' 없지만, 우편배달·재판부 숙려 기간 고려해야 생후 16개월 영아가 양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다 숨진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 보내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6일 다수의 육아 정보 공유 온라인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진정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취지의 글과 인증 사진이 잇따르고 있다.
게시물을 올린 이들은 진정서 작성 형식과 해당 사건 번호 등을 안내하면서 "진정서가 1만 장이 넘어야 법적 효력이 생긴다", "마지막 공판 10일 전까지 도착하는 진정서만 인정된다"고 적어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에 연합뉴스는 전문가들에게 진정서의 법적 효력과 접수 방식 등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법적 효력이나 '최소 몇장' 규정 없어…양형시 참고여부 판사재량
결론부터 말하면 1만장이 넘어야 진정서에 법적 효력이 생긴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우선 진정서 자체가 법적 효력을 갖는 문서가 아니다.
수사기록, 증거물 등과는 다른 것이다.
즉, 수사 기관이 피의자에게 특정 혐의를 적용하거나 재판부가 유무죄를 결정할 때 진정서를 참고 또는 반영해야 한다는 등의 법 규정이 없다.
따라서 '진정서가 1만 장 이상이 돼야 법적 효력이 생긴다'는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효력이 발생하게 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진정서 건수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진정서 접수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재판부가 공판 과정에서 담당 사건과 관련된 진정서를 검토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진정서가 몇 장이 오든 법적 효력은 없다"면서 "오히려 효력이 있다고 하면 재판에 제3자가 개입하는 것과 같다"고 전제했다.
그는 그러면서 "인지상정으로 진정서를 참고하지 않을 수는 없다"며 "피고인이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할 경우 이를 고려하는 것처럼, 의견을 살펴서 양형에 참고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진정서를 양형 등에 반영할 것이라는 기대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도 "진정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엄벌 요구 진정서가 많이 접수됐다면)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됐고 제대로 된 처벌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차원에서 재판부가 고민은 더 많이 해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번 사건처럼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2013년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 때도 1, 2심 재판부에 도합 1만 건이 넘는 진정서가 제출된 바 있다.
당시 피고인 A씨는 1심에서 상해치사죄가 적용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서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18년으로 형이 늘었다.
A씨는 이후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진정서 1만 장' 이라는 숫자도 이 같은 선례를 참고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단, 진정서를 양형시 반영할지 말지, 어느 정도 반영할지 등은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 사항이다.
이번에 사회적으로 문제 의식을 불러일으킨 영아 학대 사망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신혁재 부장판사)는 6일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증거를 다 보고 유·무죄 여부를 판단하기 전까지는 진정서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고 10일 전에 도착해야?…'데드라인' 없지만 재판부가 검토할 시간 등 감안해서 보내야
그렇다면 해당 심급 재판의 마지막 재판일인 선고 공판기일 10일 전에 진정서가 도착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떨까? 이 역시 규정상의 근거는 없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진정서 접수 방법을 설명한 게시글에서 "1심 마지막 선고 10일 전까지 보내시면 된다"고 안내하면서 '선고 열흘 전이 진정서 데드라인'이라는 주장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이달 초 홈페이지와 온라인 카페에서 '16개월 입양아 진정서 양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진정서 양식을 공유하고 "선고일 10일 전까지만 들어가면 되니 앞으로 몇 달간은 계속 보내셔도 된다"고 공지했다.
뒤이어 올린 '진정서에 대한 궁금증 Q&A'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진정서를 언제까지 보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같은 내용으로 안내했다.
이 글은 현재 진정서 보내기에 동참했거나, 하려는 이들을 중심으로 널리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진정서가 법원에 도착한 뒤 재판부가 결정을 내리기까지 숙려 기간을 고려해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가 안내한 것일 뿐이며, 그와 관련한 법규정은 없다.
다만 진정서가 법원에 접수되면 담당자가 사건 번호를 확인해 해당 재판부로 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과, 선고일이 임박한 시점은 재판부가 이미 양형을 비롯한 판단을 마무리하는 단계여서 진정서가 검토될 여지가 줄어드는 점 등은 현실적으로 감안할 필요가 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판사들이 그 시점(선고 10일 전)쯤부터 판결문을 쓰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적어도 그 전에 진정서를 보낼 수 있도록 안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진정서를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중 어떤 방식으로 접수하는 것이 나은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둘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우선 사건 당사자라면 '형사사법포털' 사이트를 이용해 엄벌 진정서를 제출할 수 있지만,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3자의 경우 이용할 수 없다.
결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온라인 진정서 제출'이란, 우체국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전자 문서를 첨부한다는 것 외에 종이 우편을 보내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에 대해 공 대표는 "큰 차이는 없지만, 진정성을 보인다는 차원에서 가급적 우편으로 보내주시길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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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