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 붕괴되고 말 것"
日정부가 '脫석탄' 밀어붙이자
도요다 아키오 사장 날선 비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 10월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실질 배출량을 ‘제로(0)’로 줄여 탈석탄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2030년대 중반까지 휘발유와 디젤 등 순수 화석연료 차량의 판매를 중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도쿄도는 이보다 5년가량 빠른 2030년까지 휘발유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도쿄는 화석연료 자동차의 판매 중지 시점을 2035년에서 2030년으로 5년 앞당긴 영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먼저 휘발유차를 퇴출시키는 도시가 될 전망이다.
도요다 사장은 2030년 휘발유차의 판매를 중단시키면 “자동차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전기차도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서 휘발유차를 없애겠다고 말하는 것인가”라며 정치권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도요다 사장은 이어 원자력발전 비중이 높고 화력발전 비중은 낮은 프랑스를 사례로 들며 “국가적인 에너지정책의 대변혁 없이 (온실가스 배출 제로) 달성은 어렵다”고 했다. 화력발전의 비중이 높은 일본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같은 친환경차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농업과 수산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고 대중교통망이 크게 부족한 지방의 경차 의존도가 높은 현실도 자동차 시장의 구조를 친환경차로 급속히 바꾸기 어려운 이유로 꼽았다. 지난해 일본에서 팔린 신차 504만 대 중 경차와 트럭의 비중은 각각 28.5%와 16.9%로 두 차종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경차는 70%가 휘발유차고 트럭은 99%가 디젤차다.
저렴한 가격이 무기인 경차와 적재공간을 중시하는 트럭 업체들은 배터리와 모터 가격이 비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친환경차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도요타의 자회사로 일본 최대 경차 메이커인 다이하쓰와 3위 혼다는 주력 모델이 모두 휘발유차다. 경차 2위 업체인 스즈키가 ‘마일드하이브리드’라는 하이브리드 경차를 판매하지만 연비 개선 효과는 일반 하이브리드차보다 상당히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르노와 미쓰비시자동차가 전기차 경차를 개발하고 있지만 2023년에야 시판이 가능할 전망이다. 도요다 사장은 “지방에서 경차는 한마디로 생명선”이라며 “지금까지 쌓아올린 업적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정부가 일본의 장점을 유지할 수 있게 응원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철강연맹 회장(일본제철 사장)도 같은 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2050년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려면 “연구개발에만 10년, 20년이 걸리기 때문에 개별 기업이 속행하는 것은 무리”라며 정부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일본제철은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수소제조법과 전기로를 도입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0으로 줄일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위한 설비투자 비용 때문에 일본제철의 단기 실적이 압박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도요타와 일본제철은 ‘일본 재계의 총리’로 불리는 게이단렌 회장 14명 가운데 5명을 배출했다. 또 일본의 대표 제조업인 자동차와 철강업계를 상징하는 기업이어서 일본 정부에 대한 발언력이 매우 강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이날 발언은 자동차공업회와 철강연맹 대표 자격으로 한 것이지만 일본 최대 제조업체의 CEO가 잇따라 정부 정책에 반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일본 국립환경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일본이 배출한 온실가스 12억4000만t 가운데 자동차와 철강업계의 배출량은 3억3000t으로 약 30%에 달했다. 특히 세계 철강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자국의 산업부문 전체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30% 미만인 데 비해 일본 철강업계의 비중은 47.6%로 유독 높다. 일본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어서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자동차와 철강업계의 협조 없이 탈석탄사회를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