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A(22)씨는 이번 학기에 듣고 싶었던 강의가 있었지만 녹화 수업으로 진행되는 탓에 수강을 포기했다.
대학 자체 홈페이지에서 녹화 강의를 재생해야 하는데, 홈페이지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대체 텍스트가 입력되지 않아 혼자 강의를 재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상 등교할 때는 장애학생 도우미 근로장학생들로부터 면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온라인 수업 환경에서는 도우미와의 소통도 제한적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은 화면 읽기 프로그램을 이용해 PC와 스마트폰을 쓴다.
프로그램이 화면의 기호나 이미지에 입력된 대체 텍스트를 읽어주는데, 텍스트가 입력되지 않은 경우 "문자열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음성안내밖에 해줄 수 없다.
A씨는 11일 "대학 강의 재생시스템에 스스로 접근할 수 없어 출석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따로 교수님께 설명해 드려야 했다"며 "강의가 올라온 지 일주일 뒤에 음성파일을 받아 학습하다 보니 마지막 수업을 듣지 못한 채 시험을 봐야 하는 불상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강대생 시각장애인 조모(23)씨는 학교 공식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교수들의 공지사항 전달과 학생들 간 소통 등 학습 편의를 위해 고안됐지만 조씨에게는 장벽과도 같았다.
조씨는 "스마트폰 음성안내 기능으로 앱에 접속했더니 '햄버거 아이콘'(Icon Hamburger)이라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며 "알고 보니 '메뉴' 버튼이었는데 대체 텍스트가 없어 개발자가 지정해둔 변수 이름을 안내해준 것이었다"고 말했다.
대체 텍스트가 곳곳에 누락돼 있다 보니 강의 관련 공지사항을 찾고자 매번 여러 버튼을 클릭해보며 확인해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조씨는 "교육부에서 각 대학에 장애학생 지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은 오프라인 수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수업이 확대될 전망인 만큼 이제는 장애인의 온라인 접근성도 적극적으로 관리·감독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대학에 재학 중인 장애인 학생은 7천672명이며, 이 가운데 18%(1천384명)가 시각장애인이다.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장애 대학생들의 원격강의 수강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을 추가 확보해 인적·물적 지원을 확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대학에 입학하는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필요한 지원을 구체적으로 묻는 표준화된 질문지를 배포하는 등 환경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남정한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갑작스럽게 닥치면서 도래한 언택트 사회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의 소외와 어려움이 가중됐다"며 "사회 전체가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온라인 플랫폼 설계 단계에서부터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