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만델라 타계 7주기 '끊어진 듯한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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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화합, 국가 비전, 교육 과제 여전"…교민·현지인 목소리
5일(현지시간)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타계한 지 7주기이다.
'마디바'(존경받는 어른이라는 존칭)로 불리는 만델라는 '무지개 나라'라는 별명을 가진 남아공의 인종화합을 꿈꾸었다.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정책)를 종식시키고 흑인 최초로 남아공 대통령이 된 그의 꿈은 오늘날 어떻게 된 것일까.
최근 교민들과 현지 백인 일부와 각각 오늘날 남아공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차례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교민 2명은 환갑 언저리로 아프리카에 와서 생활한 지 20, 30년이 됐다.
1980년대 후반에 남아공 한인 이민이 본격화됐다고 할 때 1세대라 할 수 있다.
영어도 유창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저마다 억척스럽게 사업을 일구었고 이곳에서 장성한 자녀들도 자립할 일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교민 입장에서 남아공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자신들은 이곳에 정착해서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자녀 세대들에 대해서 아주 밝지만은 않았다.
주로 이민 1세대만 남아 있지 2세대, 3세대까지 이곳에 뿌리를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흑인 다수에게도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이민자에게까지 좋은 잡(job)이 돌아오기 힘들다는 점도 한몫했다.
결국 엔지니어, 의사, 회계사 등 전문 직종이 아니면 자영업을 해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떠나거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국내 대기업의 현지 법인에 취직해도 승진 등 인센티브가 파견 주재원 우선으로 가기 때문에 현지에서 교육받은 이민 2세대 등에게 자기 발전을 위한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기 힘들다고도 한다.
아프리카가 미래의 땅이라고 할 때 이곳에 교민 2, 3세대까지 충분히 현지화하며 실력을 양성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이다.
단, 현 단계에서 한국 진출 기업과 교량 역할을 하거나 한국인 특유의 순발력을 살려 틈새시장을 찾으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얘기도 했다.
다른 40대 후반 교민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학 등 고등교육의 상대적 부실과 도서관 등 인프라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단적으로 아이들을 이곳에서 계속 대학생까지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서 "할 수만 있다면 미국 등으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 일부 남아공 대학 수준은 세계 100위권 안에 들기도 했으나 흑인 정부 들어 순위가 하락하고 수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일례로 케이프타운의 한 '명문대학' 도서관은 미국 지방대학 도서관에 비하면 장서가 10분의 1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 문제 하나만 놓고 봐도 "지도자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단 이곳의 자연환경은 좋다고 덧붙였다.
앞서 현지 대학에서 수업을 하는 한 백인 강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봉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이 제대로 안 돼 학생들에게 복사본을 우편으로 보내 수업하는 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3일 산책 도중 우연히 얘기를 나눈 프리토리아 현지 11학년(우리의 고2에 해당) 백인 학생 '데릭'의 경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는 8학년(중2)부터 사업을 했다고 한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할머니가 부동산을 물려줬다고 하고 스스로 목재를 파는 사업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고등학생에게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었다.
그는 "사업하는 법을 요즘은 엄마가 가르쳐준다"고도 했다.
자신의 꿈은 변호사인데 앞으로 대학 공부는 미국에 가서 하고 싶다고 밝혔다.
'남아공에서 소수인 백인으로서 이곳에 미래가 있느냐'고 묻자 자기 대는 그럭저럭 해볼 만한데 앞으로 50년 후 자기 자식 대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자기가 사업을 일찍 시작한 것도 흑인 다수 사회에서 일자리가 귀한 만큼 일찍이 뛰어들었다고 했다.
아울러 흑인을 일정 비율 의무적으로 고용하게 돼 있는 흑인경제육성정책(BEE) 때문에 비즈니스도 인종적으로 정치화됐다면서 백인은 사업체가 좀 크면 흑인 동업자에게 일정액을 넘겨주는 대신 그냥 자기 사업을 영위한다고 했다.
백인은 백인에게 일자리를 넘겨주고 흑인은 흑인에게 잡을 넘겨주려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만 형식적으로 지키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며 백인들이 일자리에서도 수세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베프'(가장 친한 친구)는 흑인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요즘 남아공은 여름으로 접어들어 소나기도 퍼붓고 요란한 천둥 번개와 함께 우박도 동반될 때가 있다.
지난 1일 비가 내린 후 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떴는데 중간이 끊어진 듯 희미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보니 먹구름 사이로 보일락말락 쌍무지개도 떴다.
만델라가 꿈꾼 무지개 나라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연합뉴스
'마디바'(존경받는 어른이라는 존칭)로 불리는 만델라는 '무지개 나라'라는 별명을 가진 남아공의 인종화합을 꿈꾸었다.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정책)를 종식시키고 흑인 최초로 남아공 대통령이 된 그의 꿈은 오늘날 어떻게 된 것일까.
최근 교민들과 현지 백인 일부와 각각 오늘날 남아공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차례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교민 2명은 환갑 언저리로 아프리카에 와서 생활한 지 20, 30년이 됐다.
1980년대 후반에 남아공 한인 이민이 본격화됐다고 할 때 1세대라 할 수 있다.
영어도 유창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저마다 억척스럽게 사업을 일구었고 이곳에서 장성한 자녀들도 자립할 일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교민 입장에서 남아공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자신들은 이곳에 정착해서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자녀 세대들에 대해서 아주 밝지만은 않았다.
주로 이민 1세대만 남아 있지 2세대, 3세대까지 이곳에 뿌리를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흑인 다수에게도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이민자에게까지 좋은 잡(job)이 돌아오기 힘들다는 점도 한몫했다.
결국 엔지니어, 의사, 회계사 등 전문 직종이 아니면 자영업을 해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떠나거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국내 대기업의 현지 법인에 취직해도 승진 등 인센티브가 파견 주재원 우선으로 가기 때문에 현지에서 교육받은 이민 2세대 등에게 자기 발전을 위한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기 힘들다고도 한다.
아프리카가 미래의 땅이라고 할 때 이곳에 교민 2, 3세대까지 충분히 현지화하며 실력을 양성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이다.
단, 현 단계에서 한국 진출 기업과 교량 역할을 하거나 한국인 특유의 순발력을 살려 틈새시장을 찾으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얘기도 했다.
다른 40대 후반 교민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학 등 고등교육의 상대적 부실과 도서관 등 인프라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단적으로 아이들을 이곳에서 계속 대학생까지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서 "할 수만 있다면 미국 등으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 일부 남아공 대학 수준은 세계 100위권 안에 들기도 했으나 흑인 정부 들어 순위가 하락하고 수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일례로 케이프타운의 한 '명문대학' 도서관은 미국 지방대학 도서관에 비하면 장서가 10분의 1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 문제 하나만 놓고 봐도 "지도자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단 이곳의 자연환경은 좋다고 덧붙였다.
앞서 현지 대학에서 수업을 하는 한 백인 강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봉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이 제대로 안 돼 학생들에게 복사본을 우편으로 보내 수업하는 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3일 산책 도중 우연히 얘기를 나눈 프리토리아 현지 11학년(우리의 고2에 해당) 백인 학생 '데릭'의 경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는 8학년(중2)부터 사업을 했다고 한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할머니가 부동산을 물려줬다고 하고 스스로 목재를 파는 사업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고등학생에게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었다.
그는 "사업하는 법을 요즘은 엄마가 가르쳐준다"고도 했다.
자신의 꿈은 변호사인데 앞으로 대학 공부는 미국에 가서 하고 싶다고 밝혔다.
'남아공에서 소수인 백인으로서 이곳에 미래가 있느냐'고 묻자 자기 대는 그럭저럭 해볼 만한데 앞으로 50년 후 자기 자식 대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자기가 사업을 일찍 시작한 것도 흑인 다수 사회에서 일자리가 귀한 만큼 일찍이 뛰어들었다고 했다.
아울러 흑인을 일정 비율 의무적으로 고용하게 돼 있는 흑인경제육성정책(BEE) 때문에 비즈니스도 인종적으로 정치화됐다면서 백인은 사업체가 좀 크면 흑인 동업자에게 일정액을 넘겨주는 대신 그냥 자기 사업을 영위한다고 했다.
백인은 백인에게 일자리를 넘겨주고 흑인은 흑인에게 잡을 넘겨주려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만 형식적으로 지키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며 백인들이 일자리에서도 수세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베프'(가장 친한 친구)는 흑인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요즘 남아공은 여름으로 접어들어 소나기도 퍼붓고 요란한 천둥 번개와 함께 우박도 동반될 때가 있다.
지난 1일 비가 내린 후 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떴는데 중간이 끊어진 듯 희미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보니 먹구름 사이로 보일락말락 쌍무지개도 떴다.
만델라가 꿈꾼 무지개 나라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