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심각한 영향 미칠 수도"…개발원 "교재 재검토 및 새로 제작·배포"
보건당국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만든 비만 예방 사업 교재에서 알레르기 증상에 대한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올해 '건강한 돌봄놀이터' 사업에서 쓰인 영양 교재에 '우유에 알레르기가 있으면, 우유 대신 마시는 요구르트 또는 치즈로 먹을 수 있어요'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돌봄놀이터 사업은 초등 돌봄교실,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영양·신체활동 교육 등 비만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사업을 진행한다.
문제가 된 교재는 놀이형 영양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것으로, 건강한 음료를 주제로 다뤘다.
그런데 해당 교재에서는 '흰 우유 1컵을 대신해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붙임딱지를 붙여 보자'며 한 페이지 걸쳐 우유 알레르기가 있다면 마시는 요구르트 또는 치즈를 먹을 수 있다는 문구를 담았다.
우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경우, 보통 비슷한 유제품 군인 치즈나 요구르트를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부가 운영하는 식품안전정보포털 '식품안전나라'에서는 우유 알레르기와 관련해 "유제품인 치즈에도 알레르기 유발 성분이 들어 있다.
티라민이다.
일부 예민한 사람은 치즈를 먹은 뒤 편두통을 일으킨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알레르기 환자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유를 못 먹는 아이에게 치즈나 요구르트라니, 알레르기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만든 교재"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우유 알레르기가 있다는 주부 한모(45)씨는 "아이 건강,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서 매번 음식 성분표를 확인하고 의심스러우면 제조사까지 전화한다.
보건당국이 이런 점도 인지 못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소아 알레르기 전문가들 역시 일반적인 의학 상식과는 다른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소아 알레르기 및 호흡기 전문가는 "우유 알레르기 환자 중에는 치즈, 떠먹는 요구르트에서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심각한 위해를 나타낼 수도 있어 가급적 먹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의 교수는 "우유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문구"라면서 "약한 경우에는 두드러기 정도로 그치지만, 심한 경우 먹고 난 뒤 중증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 반응으로 생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민원이 제기되자 해당 교재를 만든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측은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개발원은 "문제가 된 교재의 주된 내용은 식품 알레르기가 아니라 당이 많은 탄산음료 대신 건강한 음료를 먹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면서도 "문구에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개발원 관계자는 "교재를 만들기 전 영양학·교육학 분야 전문가 감수를 거쳤지만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며 "우선 지역 보건소 100여 곳을 대상으로 정정 내용을 설명하고 재교육하도록 안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업 운영이 잘 안 되었다고 한다"면서도 "전문가들에게 교재 내용을 다시 자문받아 보완한 뒤, 교재를 수정 제작해 배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