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호 켈스 대표(51)는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다. 연세대 세라믹공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반도체 공정을 전공했다. 첫 직장은 쌍용양회 중앙연구소였다. 이곳에서 신소재 개발 업무를 했다. 이 대표가 바이오 분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직장상사였던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과 손잡고 2000년 포휴먼텍이라는 바이오 신약 개발사를 공동 창업하면서다. 이 부회장의 형인 이상규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의 연구물을 기반으로 천식 치료제, 주름개선제 등을 연구했다.
진단 분야에 발을 디딘 것은 누리비스타 사업본부장으로 옮기면서다. 이곳에서는 MRI를 찍을 때 쓰는 조영제와 함께 진단기기를 개발했고 면역진단업체인 피씨엘에서는 연구개발(R&D) 생산 인허가 등 사업 전반을 총괄했다. 2017년 초 피씨엘이 코스닥 상장하는데도 일조했다.
분자 이온 농축 기술로 진단 한계 뛰어넘는다
이 대표는 2018년 3월 켈스를 설립했다. 우연히 알게 된 이정훈 광운대 전기공학과 교수의 논문 다섯편을 접하고서다. 사업 가능성을 알아본 이 대표는 이 교수와 공동 창업했다.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은 이온농도분극(ICP·Ion Concentration Polarization) 기술이다. 분자에 일정한 전기장을 가해 분자 내 이온들이 한쪽으로 몰리게 한 뒤 농축하는 것이다. 다양한 바이오 분자에 적용이 가능한 게 이 기술의 최대 장점이다. 이 대표는 “바이러스나 질환 단백질의 수가 적어 기존 기술로는 진단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이 기술을 적용하면 진단이 가능하고 정확도까지 더 높일 수 있다”고 했다.
ICP는 일종의 현장진단 플랫폼 기술이다. 단백질, 유전자, 세균, 바이러스 등의 진단에 적용할 수 있다. 첫째, 단백질의 경우 종류를 가리지 않고 농축이 가능하다. 암 등 대다수 질환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실험에서 단백질 분자를 100분의 1까지 농축할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임상적 민감도를 기존 기술보다 10배 정도 높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둘째, 유전자의 경우는 크기별로 분리해서 농축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유전자 증폭 진단(PCR)의 정확도와 효율을 높이는 데 적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셋째, 세균과 바이러스 진단 정확도도 크게 높일 수 있다. 항생제 내성 진단이나 감염성 질환 진단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는 “인플루엔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타액 기반 질환 진단시대 열겠다
켈스는 ICP 기술을 토대로 타액 기반의 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혈액이 아닌 타액 만으로 질환은 물론 감염병 등을 간편하게 진단하는 제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타액에는 혈액 속에 있는 대부분의 성분이 섞여 있다”며 “다만 타액에 있는 성분들은 각각의 농도가 혈액 속에 있는 성분에 비해 1000분의 1 밖에 안돼 기존 기술로는 진단이 어렵다”고 했다.
타액 진단이 갖는 차별점도 염두에 뒀다. 기존 혈액 검사는 주사기로 혈액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이 고통스러워하고 감염 사고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타액 채취는 이런 불편이나 위험이 없다. 최근 타액 진단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배경이다.
타액 진단 제품은 이미 상용화됐다. 미국 진단업체 오라슈어테크놀로지스는 에이즈, C형간염을 타액으로 진단할 수 있는 제품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고 판매 중이다. 에이즈 타액 진단키트 오라퀵은 국내에도 수입됐다. 가격은 4만3000원 선이다. 주로 치과 등에서 많이 쓴다. 임플란트 시술 등에 앞서 감염 여부를 금세 알 수 있어서다. 이 대표는 “감염병 검사를 외부 진단기관에 맡길 경우 대개 2~3일이 걸리기 때문에 병의원은 물론 환자들 모두 불편하다”며 “치과를 중심으로 타액 진단 시장이 빠르게 커질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도 타액 진단 시장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봤다. 이 회사는 타액으로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현장에서 진단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암 염증 패혈증 등 질환 진단은 물론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호르몬 검사, 마약 검사 등에도 널리 활용될 수 있어 향후 전망이 밝다는 게 이 대표의 판단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마약 검사 등에 타액 진단 기술이 이미 활용되고 있다”며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고도 간편하게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시장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에이즈 타액 진단 제품 임상 준비 중
켈스는 오라슈어가 선점한 에이즈 타액 진단시장에 우선 도전장을 낼 계획이다. 오라슈어보다 기술적으로 앞선데다 가성비를 갖춘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거쳐 내년 본격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임상은 1년 정도 소요된다. 에이즈 감염 여부를 판별하는 게 아니라 에이즈 환자가 약 내성 등으로 질환이 악화됐는지 여부를 직접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자가진단 제품으로 개발한다. 이 대표는 “식약처 허가 심사 기간 등을 감안하면 2022년 하반기에는 에이즈 타액 진단키트를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저개발국 등을 타깃으로 해외 시장도 개척할 것”이라고 했다.
켈스는 두경부암 등 뇌질환과 C형간염 진단제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뇌질환 진단제품은 질환 진단용으로, C형간염 진단제품은 에이즈처럼 감염자의 자가관리용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C형간염 진단제품이 개발되면 중국 시장부터 공략할 계획이다. C형간염은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이다.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OEM)사업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9월 인수한 진매트릭스바이오의 안양공장에선 B형간염, C형간염, 에이즈, 헬리코박터균, 댕기열 등의 신속 진단제품을 생산해 국내외 제약사에 납품하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는 45억원이다. 이 대표는 “타액 진단키트 판매로 실적을 내는 시점에 기업공개(IPO)를 하려고 한다”며 “2~3년 내에 상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