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할 文정부 정책
정부와 여당이 ‘공정경제 3법’이라고 이름 붙인 법안에 대법원이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법안의 대(大)전제가 부인당한 셈이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이 반대의견을 낸 것은 상장기업에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하게 하고,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받도록 한 상법 개정안이다. 대주주의 경영 전횡을 막고 소수주주를 보호해 ‘공정한 경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는데, 대법원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주식 평등의 원칙과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과도하게 인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다소 복잡한 표현을 했지만, 한마디로 “불공정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대법원은 상법 개정안 가운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한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서도 “해외 입법례를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의견을 냈다. 상장사 지분 0.0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게 한 조항인데, 해외에 이런 규정을 둔 나라가 없어서다. 기업들은 당연히 펄쩍 뛰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가총액 3000억원 미만인 기업이 84%에 달하는 코스닥 등 증권시장에서 소송꾼들에게 푼돈으로 마음껏 기업을 괴롭힐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코스피 상장사는 최소 135만원어치 지분만 있으면 자회사를 제소할 수 있고, 코스닥은 138만원이면 가능하다. 정부방안대로 제도가 도입되면 소송 리스크가 지금보다 3.9배 커진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문재인 정부의 보호·육성 대상이라는 중소기업들이 개정안으로 인해 겪게 될 ‘평지풍파’를 호소하는 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본질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논란 소지가 큰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엉뚱한 이름표를 붙여 실상을 호도하는 행태다. ‘공정’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법 개정안이 단적인 예다. 굳이 이름표를 달겠다면 ‘대주주 견제법안’이라고 하는 게 법안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객관적 명칭일 것이다. 무리수를 둬가며 대주주 경영권을 제한하겠다는 법안에 ‘공정경제’ 이름표를 다는 것은 “기업 대주주는 무조건 탐욕스러운 존재”로 간주하는 색안경을 쓰고 있음을 실토하는 짓일 뿐이다.

문제는 법안 내용을 상세하게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다수 국민에게 정부·여당의 이런 ‘가짜이름표 붙이기’ 전략이 먹혀드는 현실이다. 기업 주주들을 대주주와 소수주주로 갈라치고는 “대주주 전횡을 막아 소수주주 권익을 보호해주는 법안”이라고 선전하면 정말 그런 줄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처우를 좋게 해줄 뿐 사업주 경영환경을 어렵게 해 새 일자리 창출을 제약하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정책을 강행하면서 ‘노동 존중’ 이름표를 붙이는 것도 본질을 호도하는 처사다. 요즘엔 해고자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 급여를 회사 측이 지급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 또한 ‘노동 존중’ 포장을 달아 강행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고용경직성이 그만큼 높아져 신규 채용을 더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 그중에서도 조직화된 대형 노조원들에게 혜택이 집중될 뿐 청년 미취업자 및 중·장년 실업자들의 일자리를 더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노동 존중’일 수 없다. ‘노조 존중’이나 ‘노동기득권 존중’으로 불러 마땅한 노동시장 왜곡정책일 뿐이다.

정파적이고 이념색채가 짙은 법안에 그럴듯한 이름표를 달아 대중을 현혹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오염시키고 타락하게 하는 행위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46년 쓴 ‘정치와 언어’라는 에세이에서 “정치인들의 언어는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왜곡하는 술수로 가득하다”고 경고한 대로다. 풍자와 개탄에 그친 오웰보다는 “이름을 바로잡는 게 정치의 기본”이라고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이 훨씬 더 쓸모있다. 공자는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느냐고 질문한 제자 자로에게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정치란 바로잡는 것(政者正也)”이라고 답했다. 2500여 년 전의 통찰이 무릎을 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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