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업체 깨끗한나라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실적이 눈에 띄게 달라져서다. 이 회사는 지난 3분기(단일) 매출 1462억원, 영업이익 1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 매출은 1505억원, 영업이익은 55억원이었다. 매출은 비슷하지만 영업이익이 약 두 배로 불었다. 올해 전체를 보면 차이가 더 크다. 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474억원, 462억원이다. 지난해 3분기엔 매출 4490억원, 영업손실 52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만 그런 게 아니다. 세하는 이번 3분기 전년 대비 52% 늘어난 58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한창제지 영업이익은 57억원으로 1년 만에 72% 증가했다. 세 회사 모두 종이의 단면 또는 양면이 흰색을 띠고 만졌을 때 '딱딱한 감'이 드는 백판지를 만든다는 게 공통점이다. 국내 1위 제지업체 한솔제지도 "백판지만 떼어 보면 3분기 실적은 괜찮았다"고 설명했다.
백판지 업계 수익성이 확 좋아진 비결은 원재료 값 하락이 첫째로 꼽힌다. 백판지는 펄프와 폐지를 섞어 만드는데 두 재료 모두 예년에 비해 가격이 내려갔다. 한솔제지 3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펄프는 톤(t)당 2018년 731달러, 2019년 551달러에 이어 올해 3분기 463달러로 내려갔다.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세계 경기 위축이 원인이다. 폐지는 ㎏당 2018년 229원, 2019년 195원에 이어 올해 3분기 174원으로 낮아졌다. 업계 한 전문가는 "원재료가 제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 안팎인데 국내서 연간 60만 톤을 사가던 중국이 환경 문제를 이유로 폐지 수입을 중단했다"며 "국내 폐지 시장이 공급 과잉이 되면서 가격이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연초 대비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3분기 원·달러 환율은 평균 약 1188원으로 연초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7월엔 1200원대에 거래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쇄용지는 내수와 수출 모두 줄었지만 백판지는 수출 규모가 예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코로나 19 때문에 배송 수요가 늘어난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치킨과 피자 등의 포장지는 모두 백판지이다. 화장품 등 고급 포장재로도 백판지가 쓰인다. 한 백판지업체 관계자는 "배송 수요는 늘었지만 마스크 쓰느라 화장을 덜하고 영화관에 안 가 팝콘 종이가 안 팔리는 등 코로나 영향은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생활편의성 때문에 배송 수요가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업계에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업계가 경쟁하듯 신규 투자에 나선 배경이다. 한솔제지는 323억원을 들여 대전공장의 백판지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3분기 대전공장 가동률은 99%다. 한창제지는 지난 9월 인수한 신풍제지 설비를 자사 공장에 설치하고 개보수를 하는 등에 내년까지 78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다만 4분기엔 백판지 업계 수익성이 3분기만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제지업계 전문가는 "4분기 들어 재고가 조금씩 늘어나는 분위기"라며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고 중국이 폐지 규제를 완화할 조짐인 것도 업황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