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 삼정KPMG 컨설팅부문 상무

국내 기업 A사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기존 범용제품 대비 수익성이 두 배가 넘는 신제품을 개발해 B국에 수출을 시작했다. B국의 로컬업체들은 기술이 부족해 같은 제품을 생산할 수 없었으나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강한 B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로컬업체의 기술추격(라이선스 도입, 합작법인 설립)으로 수출 1년 만에 반덤핑조사가 개시됐다. 고율의 반덤핑 관세가 부과돼 A사는 수출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매력적인 시장을 찾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보호무역주의를 간과한 회사의 사례다.

[한경 CFO Insight] CFO와 통상위험
과거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마다 각 국은 보호무역주의로 앞다퉈 돌아갔다. 보호무역주의는 기업의 가격경쟁력 혹은 원가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 수입 원재료에 부과된 추가 관세는 원재료 가격을 높여 원가경쟁력을 잃게 만든다. 수출 완제품에 대해 수입국 현지에서 부과된 추가 관세는 반입가격(관세 납부 후 현지 시장에 공급되는 가격)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잃게 만든다. 가격경쟁력을 높이려면 관세를 수입국 구매자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수출자가 부담해야 하는데 추가로 부담해야 할 관세가 40~50%이면 시장 전체를 포기하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

아직도 많은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이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추가 관세(반덤핑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관세 등)를 통제 불가능한 외부환경으로 인식하거나, 구매부서 혹은 해외영업부서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CF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의 생존과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회복과 시장재편에 대응하는 ‘가치 관리자’로서 통상위험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통상위험 관리로 기업가치 극대화
세계 최대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은 투자설명회에서 보호무역조치를 이용한 주요 거점시장에서의 공고한 지배력과 적은 매출 변동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CFO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인 투자자관계·홍보(IR)에서 주주가치(주가방어)와 기업가치 증대를 위한 요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공시자료에서는 보호무역과 관련된 정보를 찾기 쉽지 않다. 아르셀로미탈과 같이 국내에서 보호무역조치를 이용하는 기업도 이를 IR에 활용하지 않는다. 수출 중심의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은 더욱 찾기 어렵다. 기업은 보호무역 조치로 인한 위험에 대응하는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통상 위험에서 자유롭다는 이미지를 심는 것이 주주가치·기업가치 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보호무역주의를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태국계 다국적 기업 인도라마벤처스(Indorama Ventures)는 현지화로 글로벌시장 진출(Global Reach with Local Presence)을 내세워 2009년 5개국에 불과하던 생산거점을 2018년 26개국으로 늘렸다. 이 기업은 유럽연합(EU) 미국 중남미 동남아 등에서 잇따라 기업을 인수하면서 현지 정부에 보호무역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비시장이 있는 곳에 생산기지를 구축함으로써 물류비를 절감하고, 보호무역주의를 활용해 진입한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보호무역주의를 인수 기업의 경영정상화를 가속화하는 도구로도 활용한다. 이런 노력으로 인도라마벤처스는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과 고순도테레프탈산(PTA) 부문에서 글로벌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의 교세라그룹은 2017년 경영 부실을 겪고 있는 미국의 센코를 인수하여 교세라 센코를 설립했다. 그 후 2019년 중국과 대만, 그리고 한국산 건축용 스테이플철심(Collated Steel Staples)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반덤핑 조사 신청을 위한 준비기간에만 1년 가량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센코사를 인수함과 동시에 경영정상화 계획의 일환으로 보호무역 조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위험을 관리하는 가치 창조자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우리 기업들은 수입 원재료에 부과되는 관세에 무감각하다. 한국의 산업 구조는 최종 소비재 생산자와 그에 납품하는 협력사들이 밀접하게 연결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으로 수입하는 물품에 대해 보호무역조치를 취하고자 시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제는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기 위해 현지로 수입하는 원자재다. 해외 공장이 소재한 국가의 로컬기업들은 공격적으로 보호무역조치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19에 따른 비상계획을 가동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와 거대한 보호무역주의의 이중 파고를 넘을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CFO는 ‘보호무역 안정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사후적 평가가 아닌 사전적 전략수립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기업의 가치사슬 전체에 걸친 가치 창조자로서 CFO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