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의 장편 '운명게임'서 존재 양면성 탐구…SF·판타지 결합한 문학적 실험

슈퍼컴퓨터, 증강현실, 인공지능(AI)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가상현실이자 컴퓨터 시뮬레이션일 것이라는 이론들이 나오고 있다.

술자리 농담이나 공상과학소설(SF)에 나오는 흥미 위주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학문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과학자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끄는 혁신적 기업가 일론 머스크도 시뮬레이션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런 생각들은 누구나 품어보는 본질적 의문에서 시작된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나는 과연 실재하는가?
고대 철학자와 성인들부터 붙잡고 고민했던 이 화두를 중견 소설가 박상우가 꺼내 들었다.

4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소설 '운명게임'(해냄)을 통해서다.

박상우는 소설을 통해 '나는 무엇이고 영혼은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결국 '인간은 과연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존재이며, 정해진 운명을 피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게임 속 캐릭터처럼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서 역할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일 뿐이라는 가상현실 또는 시뮬레이션 이론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 셈이다.

박상우는 소설에서 '나'라는 하위 자아가 상위 자아의 의도를 반영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이를 인간의 '혼'과 '영', 또는 게임 캐릭터와 게이머의 관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소설은 종교와 과학을 넘나들고 때로는 초월하며 인간의 근원을 탐구하는 남성, 그리고 그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 '나'를 통해 인생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더 근원적인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부제가 '인생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진실에 대하여'인 이유다.

또 이러한 해탈과 깨달음으로 가는 서사 구조 속에 석가모니와 우파니샤드의 가르침, 윤회, 유전자 조작에 의한 현생 인류 창조, 외계인의 지구 지배, 수메르 신화, 종말론 등 다양한 지식과 철학을 접목하며 궁극으로 가는 길 위에는 일관된 무엇이 있음을 드러내려 한다.
박상우 "나와 우주의 근원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이상문학상과 동리문학상, 이병주국제문학상 등을 받으며 국내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박상우지만, 이 소설은 그답지 않게 SF, 판타지, 순수소설을 융합한 실험적 장르로 완성했다.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통섭적 실험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도가 깔린 듯하다.

박상우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에 대해 "본격소설, SF, 판타지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 장르물이다.

뿐만 아니라 픽션과 논픽션이 교차되고 있다"면서 "그런 소설적 특성을 취한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교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비실재, 진실과 거짓은 모두 '하나'의 양면성이고 그것은 인간의 의식에 원하는 대로 증강되거나 약화된다"면서 "진실 같지만, 진실이 아니고, 진짜 같지만, 진짜가 아닌 무엇. 홀로그램일 수도 있고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고 어쩌면 꿈일 수도 있는 그것이 우리의 인생 드라마가 펼쳐지는 3차원 세상의 무대"라고 했다.

박상우가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세상 사람들이 '나'의 근원에 대해, 인간과 인생의 근원에 대해, 그리고 지구와 우주의 근원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