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발전계획 사업, 예산 집행률 42% 그쳐…5년 연장
포격 사태 이후 인구·관광객 늘다가 다시 침체
[연평도 포격 10년] 최북단 '화약고' 서해 5도의 명암
남북 간 잦은 충돌이 벌어져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최북단 서해5도 중 연평도는 인천 내륙보다 북한 강령반도 끝단에 있는 등산곶이 훨씬 가까운 섬이다.

인천에서는 120㎞나 떨어져 있지만, 북한 등산곶과의 거리는 10㎞에 불과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는 고작 1.3㎞ 아래에 있다.

◇ 북한 포탄 170여발 쏟아져…주민들 3개월 피란생활

10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1천300명이 살던 작은 섬 연평도와 주변 해상에 76.2㎜ 평사포와 122∼130㎜ 대구경포 등 포탄 170여 발이 쏟아졌다.

섬 여기저기서 화염이 치솟았고 이내 시커먼 연기가 자욱했다.

그날 오후 2시 34분 북한 개머리 해안 인근 해안포 기지에서 시작된 포격은 2차례에 걸쳐 1시간이나 계속됐다.

북한의 무자비한 포격 도발로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도 60명이나 발생했다.

백령도 해역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 만이었고, 북한이 남측 영토를 향해 직접 공격을 하고 민간인 사상자를 낸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인명피해뿐 아니라 재산피해도 컸다.

8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연평도 남쪽 주민 밀집 지역에 피해가 집중됐다.

포탄에 맞아 처참하게 부서지거나 불에 탄 건물만 연평보건지소 등 50채가 넘었고, 도로와 각종 통신 시설도 파손됐다.

재산 피해액은 조업 중단에 따른 소득 손실을 포함해 120억원으로 추산됐다.

[연평도 포격 10년] 최북단 '화약고' 서해 5도의 명암
연평도 주민 1천100여명은 사흘 동안 어선이나 해경 경비함정을 나눠타고 육지로 몸을 피했다.

인천에 있는 찜질방에서 시작된 피란 생활은 임시거주지인 경기 김포 한 아파트를 거쳐 이듬해 2월까지 3개월 넘게 이어졌다.

◇ 포격 이후 관심…9천억원 규모 종합발전계획 추진

북한의 포격 도발 사태 이후 올해까지 10년간 연평도 등 서해5도는 남북관계의 굴곡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다.

정부는 포격 도발 사태를 계기로 안보 불안에 시달리는 서해5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1년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최북단 섬 주민들에게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계획은 2020년까지 10년간 민간자본을 포함해 총 9천109억원을 들여 주거환경 개선 등 78개 사업을 추진하는 거창한 내용이었다.

정부가 관심을 두자 연평도 인구와 관광객도 갑자기 늘었다.

연평도의 주민등록상 인구는 2010년 1천772명에서 2013년 2천259명으로 많이 증가했다.

연평도를 찾은 관광객도 2010년 2만2천700명에서 포격 도발 이듬해인 2011년과 2012년 3만5천명 안팎으로 급증했다.

2018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에 훈풍이 불자 다시 연평도 등 서해5도가 주목받았고, 이 지역 어민들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조성하기로 한 남북 합의에 환호했다.

[연평도 포격 10년] 최북단 '화약고' 서해 5도의 명암
◇ 관심 차츰 시들…'미완' 종합발전계획 실효성 있게 연장 추진

그러나 올해까지 10년간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의 전체 예산 9천109억원 중 실제 집행된 금액은 3천794억원(42%)으로 애초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78개 사업 중 43개 사업만 완료됐다.

올해 행정안전부와 국무조정실은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을 5년 연장하고 2025년까지 총사업비를 7천500여억원으로 줄이는 대신 해안도로 개설 등 실효성 있는 사업에 국비를 더 지원하기로 했다.

인천시 옹진군 관계자는 "노후주택 개량 사업이나 45개 대피소 신축 사업은 10년간 잘 추진됐다"면서도 "백령도에 국제관광휴양단지를 조성하는 민자유치 사업 등은 아예 진행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서해5도 지원에 인색한 사이 연평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차츰 시들해졌다.

급증하던 연평도 관광객은 2014년과 2015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여파 등을 겹치면서 다시 예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연평도 인구도 현재 2천44명으로 급증했던 2013년보다 200명 넘게 줄었다.

◇ 주민들 트라우마…"여객선 증설 등 생활밀접형 예산 늘려달라"

연평도 주민들은 북한의 포격 도발 이듬해 피란 생활을 끝내고 생업에 복귀했으나 당시 겪은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연평도에 사는 김모(57)씨는 "과거 서해 NLL 인근에서 남북이 자주 충돌할 때도 큰 두려움이 없었는데 실제로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부터는 무서웠다"며 "그 두려움이 몇 년이나 계속 돼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평도 주민 이모(61)씨는 "연평도 포격 사태 이듬해부터 정부가 서해5도에 다 지원해 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며 "공공 일자리가 늘고 정주생활지원금을 5만∼10만원씩 받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서해5도 주민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도록 여객선 증설 등 생활과 밀접한 예산을 많이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인천시 옹진군 관계자는 16일 "연평도 포격 이후 서해5도 주민들은 우리 군의 포 훈련 소리에도 놀랄 정도로 한동안 트라우마를 겪었다"며 "신규 병원선 도입과 연평도 항 신설 등 5년 연장된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은 제대로 추진해 주민들의 삶이 개선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 10년] 최북단 '화약고' 서해 5도의 명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