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아비오는 바이오네틱스에서 사명을 바꾸며 직접 후보물질 개발에도 나섰지만 김 이사가 투자할 당시에는 NRDO 기업이었다. “NRDO 기업을 굉장히 좋아하시나 봐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 이사는 “딱히 NRDO기업이라 투자한 건 아니다”고 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후보물질을 탐색하느라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는 대신 가능성 높은 파이프라인만 인수해 와서 라이선스아웃하는, 시쳇말로 빠르게 진도 빼는 데 선수인 이들이 모인 곳이라고 판단해서 투자하게 됐죠.”
내친 김에 한발짝 더 나아갔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가 상장하기 전까지는 IPO에 성공한 사례가 없었는데 그런데도 NRDO 기업에 투자를 집행한 건 상당히 위험한 결정이 아니었나요?”
이 질문에 김 이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당시 NRDO기업은 상장 사례가 없다는 한계는 있었지만 우리나라에도 NRDO 모델이 슬슬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며 “각 기업의 구성원 또한 전문성이 높고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해 투자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의 이정규 대표는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 출신으로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창업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까지 시킨 이력이 있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지난해 1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피노바이오의 정두영 대표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신약 개발을 도맡아한 연구자다. 네오이뮨텍은 제넥신의 미국 자회사로 제넥신의 연구소장이었던 양세환 박사가 독립해 설립했다. 네오이뮨텍은 상장심사가 진행 중이며 피노바이오는 내년 하반기 중 코스닥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이사는 “NRDO 여부와 관계없이 오직 기술력만 보고 투자한 기업들”이라고 했다.
마일스톤 달성한 기업에 투자
그는 투자를 결정하게 되는 기업의 핵심조건으로 기술력과 함께 신뢰도를 꼽았다. 우선 기술력이 입증된 기업에 투자하고, 이어서 약속을 지키는 기업에 ‘더 투자’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마일스톤을 달성한 기업에 후속 투자를 하는 게 그의 투자 철칙이다.
KB인베스트먼트가 피노바이오에 2차례에 걸쳐 투자한 것도 이 회사가 먼저 마일스톤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KB인베스트먼트는 이 회사를 대상으로 첫 투자에 20억원, 이어 30억원을 투자했다. 2018년 첫 투자 당시 피노바이오는 급성백혈병계열 항암제와 녹내장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회사였다. 그는 “피노바이오는 혈액암 치료제 ‘NTX-301’의 미국 임상 1a상을 올해 중 시작하기로 약속했었다”며 “미리 못 박은 일정보다 오히려 더 빠르게 임상을 시작해 후속 투자를 수월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KB인베스트먼트는 네오이뮨텍에도 두 차례에 걸쳐 투자했다. 김 이사는 이중 두 번째 투자를 주도했다. 그는 “세포치료제의 임상 진도가 기대 이상이어서 프리IPO에도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KB인베스트먼트는 가령 10개 바이오기업에 투자하면 이중 3~4곳에 후속투자를 집행한다”며 “초기부터 성장기까지 꾸준히 투자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투자를 꺼리게 되는 기업의 기준도 명확했다. 진도가 지지부진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몇 년 동안 임상 진도가 나아가지 않는 기업 또는 업계 트렌드에 비춰 이미 실현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판별된 아이디어를 고집하는 기업 등에는 투자를 자제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물질 자체가 대량생산이나 품질관리(QC)가 안 될 것 같으면 투자를 주저하게 된다”고도 말했다. 개인적으론 천연물에 대해서도 투자 집행을 소극적으로 하는 편이라고도 덧붙였다. 최근 투자 트렌드는 병용치료
김 이사는 바이오 업계 트렌드는 곧 대형 제약사의 관심사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따라서 신약 벤처들은 글로벌 제약사가 눈독을 들일만한 아이템을 쫓는다. 최근 업계 유행에 대해 “면역항암제는 인기가 좀 지난 것 같다”면서도 “대신 병용치료에 쓸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는 업체가 돈을 끌어가고 있는 걸로 본다”고 말했다. 최신 업계 트렌드는 병용요법 약물이라는 얘기다. 일부 과열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병용요법이 더 많은 암 환자들을 낫게 하기 위한 해답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며 “이런 유행은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아직은 시기상조로 여겨지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치료제의 가능성도 높게 평가했다. 성체줄기세포가 아닌 IPSc를 이용한 치료제 중 상용화된 것은 아직 없다. 그는 “유전자 치료제와 마찬가지로 IPSc 또한 테라토마(기형종양) 등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IPSc가 다른 방식 대비 더 효과를 낼 수 있는 질환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지난해 IPSc로 레버씨 시신경 위축증 치료제를 개발 중인 신약 벤처 클라비스테라퓨틱스에 투자했다. 그는 “이 회사는 IPSc로 안구 세포와 안구 시신경을 만드는 레시피를 갖고 있는 곳”이라며 “망가진 시신경을 회복시키는 데 줄기세포보다 더 효과적인 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유전자 치료제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안전성 문제만 해결되면 약이 못 되리란 법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유전자 치료제는 희귀질환 치료제 쪽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술력 좋아도 자본 없으면 멈추는 K바이오
김 이사는 제약사 출신 VC 바이오 투자 심사역이다. 작용기전(MoA)과 품질관리, 생산관리 등에 밝은 것도 이런 이력을 갖고 있어서다.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석사 과정까지 마친 그의 첫 직장은 2005년 입사한 LG생명과학이다. 이곳에서 특허 업무를 담당하다 2012년 셀트리온으로 자리를 옮겼다. 셀트리온에서도 특허 업무를 맡았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대웅제약에서 신제품 개발 업무에 참여했다. 특허 관련 업무부터 연구개발(R&D)까지 다양한 커리어를 쌓은 셈이다. 그는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자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결국 돈이 없으면 더 진행할 수 없는 게 바이오 업계였다”며 “자본의 효율적인 집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해 VC 업계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6년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에서 투자업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CJ그룹 계열사인 창투사다. 영화 및 콘텐츠 분야에 주로 투자했지만 제약·바이오 심사역을 새로 뽑는다는 소식에 지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CJ그룹에 바이오헬스기업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가 계열사로 있어 바이오 투자에 관심이 많던 시기였다”고 했다. 하지만 2017년 그룹 내 분위기가 바뀌었다. 2017년 11월 CJ헬스케어 매각작업이 시작됐다. 덩달아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의 바이오기업 투자에도 공백기가 생겼다. 김 이사는 “때마침 KB인베스트먼트가 심사역을 확충하고 있어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KB인베스트먼트의 바이오투자그룹은 총 6명이다. 신정섭 상무가 총책임을 맡고 있으며 국찬우 본부장이 지휘하는 글로벌바이오투자본부를 따로 뒀다. 김 이사는 국내 투자를 맡고 있지만 해외 투자를 하지 못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조직편의상 국내 투자와 해외 투자를 나누긴 했지만 서로 전문성을 갖자는 취지이지 선을 그은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끝으로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후보물질이 진짜로 약이 돼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투자업에 충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