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연내 처리 방침을 밝힌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계가 “세계 유례없는 규제”라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두 단체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법무부에 전달했다고 8일 발표했다.

경제계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한국 법체계에 맞지 않는 조항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대한상의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현행 법제에 영미법 제도인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전면 도입할 때 예상되는 법체계 간 충돌 등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국 집단소송제를 모델로 하면서 미국에는 없는 원고 측 입증책임 경감을 추가한 현 개정안은 민사소송의 입증책임 분배 원리에 맞지 않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총도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그대로 법률로 수용한 사례는 영미법계 국가에서도 드물다”며 “우리나라도 유럽과 일본처럼 미국식이 아니라 공동소송, 제한적인 단체소송제 등 현행 제도를 보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또 대한상의와 경총은 이대로 법안이 개정되면 과다배상, 기술 유출 등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대한상의는 집단소송법안이 특허법상 자료제출명령 제도를 차용해 일반 손해배상에서 기업 영업비밀을 예외 없이 제출하도록 한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영업비밀은 기술 유출 방지 등 각종 법률로 보호되는 기업의 핵심 자산으로, 민사소송법의 문서 제출명령은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제출을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특허법의 자료제출명령은 특허침해소송 등에만 영업비밀 제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일반 손해배상책임을 다투는 집단소송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경총도 남소방지장치 삭제 등 소송요건 완화로 인한 부작용을 지적했다. 집단소송법안은 현행 증권집단소송법의 ‘3년간 3건 이상 관여자 배제’ 조항을 삭제했고, 소송허가 요건도 미국보다 완화했다.

경총은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 제기가 알려지는 것만으로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주가 하락, 신용 경색, 매출 저하로 이어져 중소기업은 파산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경총 관계자는 “변호사업계의 소송 부추기기 경쟁에 이어 거액의 합의금을 노리는 외국의 집단소송 전문 로펌까지 가세하면서 과다배상을 요구하는 기획 소송이 급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2개 법안의 동시 입법 추진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