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바람에 마지막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이제 가을은 작별을 고하고 있다.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선호하는 계절과 가장 싫어하는 계절로 가을과 겨울이 꼽혔다. 특이한 것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가을보다 봄을 선호하고 겨울을 싫어하는 정도가 더 심했다는 것이다. 겨울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가을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는 것은 선뜻 이해가 안 된다. 겨울을 알리는 가을이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이가 듦에 따라 기억의 퇴적량은 많아지고 일종의 풍화작용을 통해 좋은 기억은 점차 흐려지는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계절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게 된다.

영화 ‘루시(Lucy)’에서 주인공은 만물의 유일한 측정 단위는 시간뿐이며 시간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시간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과거에서 기억이 불가능한 미래로만 흐를까? 바로 ‘시간의 심리적 화살’ 때문이다. 탁자 위에 놓인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 차갑게 식어버리고 스스로는 다시 데워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시간의 열역학적 화살’에서는 모든 물질은 낮은 엔트로피(entropy) 상태에서 높은 엔트로피 상태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낮은 엔트로피는 상대적으로 질서가 잘 유지돼 있는 상태이며 반대로 높은 엔트로피는 혼돈스러운 상태다. 빅뱅 이전의 우주는 완벽한 정돈 상태로 모든 물질은 응집돼 있었다. 빅뱅을 통해 우주가 생성되면서 이들 물질은 서로 묶이고 흩어지기도 하면서 혼돈스러운 상황으로 진행한다. 시간 역시 낮은 엔트로피에서 높은 엔트로피로 진행하기 때문에 과거에서 미래로만 진행되는 불가역성의 산물이다.

엔트로피는 열역학에서 발원했다. 그런데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에르빈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란 저서를 통해 이를 생물학에 접목한 뒤 정보처리론과 심리학에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심리학에서는 폴란드의 심리학자 안토니 케빈스키가 ‘정보 신진대사(information metabolism)’ 이론을 정립하면서 엔트로피가 도입됐다. 생명을 지닌 유기체는 주변 환경 변화에 대응해 자신의 신체적, 심리적 질서를 유지하고 이런 능력을 후세대에 전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그 생명체는 도태된다.

결국 생명은 ‘나’와 주변 환경이란 ‘타자’ 간의 정보 교환을 통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불확실성하에서 낮은 엔트로피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심리적 질서가 깨져 엔트로피가 상승하면 근심이나 우울증, 더 나아가 정신장애가 생길 수 있다. 심리적 혼돈 상태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고 결국 심리적 장애까지 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심리학자들은 이런 불확실성 정도를 엔트로피를 통해 측정할 수 있는 방법까지 개발하고 있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기업 역시 생명을 지닌 유기체처럼 생존을 위해서는 내적, 외적 질서를 통해 낮은 엔트로피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우리나라 기업이 마주하고 있는 환경은 그야말로 혼돈이 극대화된 상황이다. 코로나19는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의 대명사라는 미국 대선 진행 과정과 결과를 봐도 혼돈 그 자체다. 또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환경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과거와 같이 ‘돌격 앞으로’ 식의 경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런 단기적, 중장기적 불확실성은 기업 입장에서 분명한 위기지만 다른 한편으론 응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불확실한 혼돈 상태에서 경영을 축소할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대응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조직의 현재 엔트로피 수준을 측정하고 낮은 엔트로피를 유지해 내적 안정을 기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의 엔트로피 측정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6500만 년 전 백악기 말 거대한 운석의 충돌로 공룡은 멸종했지만, 공룡의 먹잇감에 불과했던 포유류는 작은 몸집과 변온성을 통해 살아남아 그들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