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KPMG 재무자문부문 김이동 전무
미국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황야'에는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화성으로 떠나려는 여인이 나온다. 1억㎞ 떨어진 곳에 있는 연인이 그리워 지구를 떠나려는 여인은 전화로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초속 29만㎞로 화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총 5분이란 시간이 걸린다. 그 말이 전해질 때까지 여인은 애가 타 눈물 짓는다. 소설 속 표현처럼 "그 말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라 우주의 일부"가 됐고 도착할 때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랑 고백이었다.
브래드버리의 단편집이 나온지 80년이 지난 지금,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향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실제 이뤄지고 있다. 바로 일론 머스크라는 흥미로운 사업가에 의해서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머스크는 기존 경영학자들의 이론을 무색하게 하는 성취를 거두고 있다. 그는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는 해리 마코위츠의 투자 이론과는 반대로 위험사업에 100% 올인했다. 그가 세운 테슬라의 시가총액(약 500조원)은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M·Capital Asset Pricing Model)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언행과 사업모델은 우리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우선 그는 일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일이란 24시간 내내 그 생각을 하고 하루 종일 그것에 메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술 진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과 실패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피라미드 짓는 법을 잊은 현재 이집트인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이같은 그의 업무 방식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고, 주 52시간 이내에서 일을 하는 한국 노동 문화 및 법규와 상당한 괴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머스크의 답변을 듣고 "과연 인간에게 일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만약 일을 본인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로 여긴다면 엄청난 열정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어떤 제도나 법규에도 불구하고 존중되고 장려돼야 하지 않을까 자문했다. 물론 그것은 자기주도하의 노동이며 주로 창업자나 경영자에 해당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가 창출한 사업모델은 크게 3가지다. 전기자동차, 태양광 발전, 우주여행이다. 그의 사업모델은 보는 이들에게 "사업(business)이란 시장의 수요에 대응하는 기업의 공급활동(후행)일까, 새로운 재화를 만들어 시장의 수요를 창출하는 선행 활동일까"라는 큰 질문을 던진다. 1차적으로는 시장의 수요에 기민하고 세련되게 대응하는 활동이 사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테슬라가 만든 전기차는 시장이 간절히 원하던 제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테슬라가 수려한 디자인과 강력한 성능의 전기차 제품을 출시하자 소비자들은 그 제품 소비를 하나의 '쿨한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됐다.
그가 만든 우주왕복선은 인간의 화성 이주를 위해 저렴한 우주선이 필요하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우주선이 출시되자 미국 국방부와 미항공우주국(NASA)의 예산절감에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이 돼 실제 구매가 이뤄지고 있다.
카카오톡은 휴대폰 문자만으로도 아무 불편함을 못 느끼던 소비자에게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냈다. 인도 타타자동차의 나노는 성능향상에 혈안이 돼 있던 기존 자동차 제조사에 큰 충격을 줬다.(슈퍼카가 즐비한 시대에 최고 속도 105㎞인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누가 세울 수 있었겠는가?) 식물로 만든 스테이크와 햄버거는 아무도 먼저 원하지 않았으나 현재 뉴요커들의 열광적 소비 대상이 됐다.
테슬라의 주식가치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상각전영업이익배수(EBITDA multiple),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현금흐름할인법(DCF) 등 모든 경제경영 공식을 끌어들여도 설명할 수 없다. 기업의 가치는 기업이 창출하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 가치의 합이라는 고전이론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미래 현금흐름의 추정을 슈퍼컴퓨터가 완벽히 제시한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성장 분야'의 기업에 있어 기존 가치평가 이론은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 주식 가치는 오히려 그 기업의 주식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량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경영자는 주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존재고, 그가 꾸는 꿈을 함께 꾸려는 자가 많을수록 그 기업의 가치는 높게 평가되는 동시에 그 기업은 충분히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힘든 시국이지만 우리나라에도 멋진, 그리고 함께 운명을 걸고 싶은 기업들이 많이 탄생하기를 손꼽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