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민 기자, A380 관광비행 첫날 탑승
가족 단위 관광객, 여행 유튜버, 블로거 등 많아
"백록담 손에 잡힐 듯 선명"…이벤트 부족 아쉬움도
승객들은 제각각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채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과 동행한 조성우 씨(60)는 “반년에 한 번씩은 아내와 함께 꼭 해외여행을 가고 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다녀오지 못했다”며 “이번 관광상품을 통해 잠시나마 여행의 기분을 느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온 승객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함께 왔다는 김명호 씨(45)는 “아이들과 함께 오랜만에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어보기 위해 이번 상품을 신청했다”고 했다.
비즈니스석 탑승을 위해 줄을 선 승객들의 상당수는 20~30대였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이번 관광상품 판매시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젊은층의 비즈니석 수요가 많았다”고 말했다. 판매가격은 비즈니스 스위트석 30만5000원, 비즈니스석 25만5000원, 이코노미석 20만5000원(세금 포함 총액)이다.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비즈니스석은 온라인 판매가 시작된 지 20분만에 전량 판매됐다. 한 20대 커플은 “평소엔 비싸서 구입하기 힘든 비즈니스석에 앉아보기 위해 온라인 판매가 시작하자마자 상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소형 카메라를 들고 직접 촬영하는 여행 유투버와 블로거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대기장에서 버스를 타고 OZ8999편 기내에 들어서니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승객들을 맞이했다. 승무원들은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낀 채 승객들을 맞이했다. 기내에서 만난 이혜린 승무원은 “오랜만에 기내에서 설렘 가득한 승객들의 환한 미소를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며 “기내식이 너무 그리웠다는 승객의 말씀처럼 코로나19가 종식돼 더 많은 분들께 여행의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좌석은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2인석은 1명씩, 3~4인석은 2명씩 배정됐다. 오전 11시 정각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먼저 동해안으로 향했다. 이날 항공기를 운항한 장두호 기장이 기내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일일이 코스를 설명했다. 통상 국내선 항공기의 이동 고도는 3만피트지만, 승객들이 한반도 상공을 볼 수 있도록 항공당국의 허가를 얻어 1만피트에서 운항했다.
이륙한 지 40분 가량 지나자 동해바다의 모습이 들어왔다. 항공기는 동해바다와 설악산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동해 앞바다에서 비행기를 크게 선회하면서 고도를 더 낮췄다. 창가자리에 앉은 승객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설악산과 동해바다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강릉을 거쳐 포항 상공에 이르자 기다리던 기내식이 나왔다. 메뉴는 토마토 닭가슴살 파스타와 샐러드 빵, 케이크였다.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주류와 음료수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맛보는 기내식에 승객들은 들뜬 모습이었다. 어린이들에겐 기내식 외에도 간식박스가 추가로 제공됐다. 이륙한 지 1시간30분 후에 비행기는 제주 상공에 도착했다. 장 기장은 우선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제주 서쪽 해안으로 크게 선회했다. 이어 한라산으로 향한 비행기는 제주공항 관제기구의 승낙을 얻은 후 고도를 조금 높여 한라산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백록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백록담에 활짝 핀 나무서리인 상고대가 하얗게 핀 모습도 뚜렷이 보였다. 승객들은 연신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한 승객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이렇게 선명한 한라산 백록담 모습을 본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제주 상공을 지나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엔 추첨을 통해 승객들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럭키드로우 행사가 열렸다. 1등으로 당첨된 승객 한 명에겐 동남아 왕복 항공권이 지급됐다. 뿐만 아니라 탑승객 전원에게는 기내식, 어메니티 키트(생활용품), 국내선 50% 할인 쿠폰, 기내면세품 할인쿠폰이 제공됐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시간은 30분 가량 넘긴 오후 1시40분이었다. 관광비행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의 승객은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만 창가 자리가 아닌 복도 좌석을 배정받은 승객들 중에선 일부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동해안과 한라산 백록담 등의 풍경을 제대로 못 봤다는 이유에서였다.
경품 행사 외에도 좀더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됐으면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기내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즐겼으면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승객들은 목적지 없는 비행에서도 기내에서 면세판매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국토교통부와 관세청은 항공기에서 착륙하지 않고 해외 영공만 통과하는 관광비행 중 항공사가 면세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선 관광비행’ 허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25일과 31일, 다음달 1일에도 A380 기종을 투입한 특별 관광비행을 운영할 계획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각종 이벤트를 내세운 관광비행 운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항공기의 효율적 이용과 여행에 대한 갈증 해소라는 점에서 항공사와 여행객 모두 윈윈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이번 상품이 항공여행이 그리운 승객들뿐 아니라 항공사에 모두 ‘윈윈(win-win)’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고 있다. A380 기종 조종사들의 자격 유지를 위해선 정기적인 운항이 필요하다.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조종사들은 특정 기종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90일 안에 이·착륙을 각각 3회 이상 경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선 수요가 사라져 장거리 노선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A380을 한때 빈 비행기로 운항하기도 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