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사람살리는 문학' 하라는 박경리 말씀 반영하려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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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 '문신' 5부작 완간하면 내 대표작…'큰 작품' 쓰라는 가르침에 영향"
"기독교 정신과 활인(活人)의 문학이 상통하는 바가 있어요.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을 선생님 말씀과 함께 작품에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올해 박경리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윤흥길(78)이 22일 온라인으로 열린 '박경리 문학상 수상 작가 간담회'에서 드러낸 자신의 문학관이다.
윤흥길은 고인이 된 박경리 작가와 신인 때부터 인연이 깊다고 털어놨다.
1971년 첫 작품인 '황혼의 집'을 발표했을 때 '문단 대선배'가 이를 읽고 감동해 칭찬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선배'가 박경리였다고 한다.
1977년 박경리의 정릉 자택을 찾아가 처음 만났을 때 뒤늦게 이런 후일담을 들었다고 윤흥길은 전했다.
그는 이후 박경리를 자주 찾아가 사제 같은 관계를 오래 이어왔고, 박경리는 그에게 항상 '가르침'을 줬다.
특히 박경리는 "큰 작품을 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윤흥길은 처음에 '큰 작품'이 분량과 배경이 방대한 작품으로 이해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무슨 뜻인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박경리 선생님이 말씀한 '큰 작품'은 규모나 분량이 아니라 인간과 인생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하고 다루는가 하는 것으로 해석하게 됐습니다.
"
무엇보다 박경리는 윤흥길에게 "너는 살인의 문학을 하지 말고 사람을 살리는 활인의 문학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에 대해 윤흥길은 "그것이 다음에 생명에 대한 말씀으로 연결됐다.
선생님이 말씀하는 큰 작품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또 '활인의 문학'을 하는 데 핵심적인 수단이 우리 문학 전통 중 하나인 '해학'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런 요소를 장편소설 '문신'에 많이 반영했다고 말했다.
윤흥길이 이날 인생 대표작이 될 것으로 꼽은 작품은 아직 완간하지 않은 장편 '문신'이다.
현재 3편까지 출간돼 있고 4편 원고를 마무리한 상태이며 마지막 5편은 내년 봄에 끝내는 게 목표다.
그는 "그나마 '문신'이 완간되면 내 대표작은 문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문신은 특히 박경리 선생의 가르침 영향을 받아 오래 준비한 작품이므로 더 의미가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연작소설집 '소라단 가는 길'을 꼽았다.
윤흥길이 이날 밝힌 수상 소감은 이렇다.
"졸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작중 인물 권 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나 이래 봬도 안동 권씨야, 이래 봬도 대학 나온 사람이야'인데, 이 두 대사가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읽힌 모양이다.
나는 권 씨를 흉내 내서 '저 이래 봬도 박경리 문학상 수상 작가다'라고 얘기하고 싶다.
"
그는 박경리에 대해 "선생님 많이 그립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 봄에 '문신'이 완간되고 코로나 사태가 좀 잠잠해지고 제 건강도 좋아지면 집사람과 함께 통영으로 선생님 위패를 꼭 찾아뵙고 인사를 다시 드리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기독교 정신과 활인(活人)의 문학이 상통하는 바가 있어요.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을 선생님 말씀과 함께 작품에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올해 박경리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윤흥길(78)이 22일 온라인으로 열린 '박경리 문학상 수상 작가 간담회'에서 드러낸 자신의 문학관이다.
윤흥길은 고인이 된 박경리 작가와 신인 때부터 인연이 깊다고 털어놨다.
1971년 첫 작품인 '황혼의 집'을 발표했을 때 '문단 대선배'가 이를 읽고 감동해 칭찬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선배'가 박경리였다고 한다.
1977년 박경리의 정릉 자택을 찾아가 처음 만났을 때 뒤늦게 이런 후일담을 들었다고 윤흥길은 전했다.
그는 이후 박경리를 자주 찾아가 사제 같은 관계를 오래 이어왔고, 박경리는 그에게 항상 '가르침'을 줬다.
특히 박경리는 "큰 작품을 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윤흥길은 처음에 '큰 작품'이 분량과 배경이 방대한 작품으로 이해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무슨 뜻인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박경리 선생님이 말씀한 '큰 작품'은 규모나 분량이 아니라 인간과 인생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하고 다루는가 하는 것으로 해석하게 됐습니다.
"
무엇보다 박경리는 윤흥길에게 "너는 살인의 문학을 하지 말고 사람을 살리는 활인의 문학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에 대해 윤흥길은 "그것이 다음에 생명에 대한 말씀으로 연결됐다.
선생님이 말씀하는 큰 작품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또 '활인의 문학'을 하는 데 핵심적인 수단이 우리 문학 전통 중 하나인 '해학'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런 요소를 장편소설 '문신'에 많이 반영했다고 말했다.
윤흥길이 이날 인생 대표작이 될 것으로 꼽은 작품은 아직 완간하지 않은 장편 '문신'이다.
현재 3편까지 출간돼 있고 4편 원고를 마무리한 상태이며 마지막 5편은 내년 봄에 끝내는 게 목표다.
그는 "그나마 '문신'이 완간되면 내 대표작은 문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문신은 특히 박경리 선생의 가르침 영향을 받아 오래 준비한 작품이므로 더 의미가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연작소설집 '소라단 가는 길'을 꼽았다.
윤흥길이 이날 밝힌 수상 소감은 이렇다.
"졸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작중 인물 권 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나 이래 봬도 안동 권씨야, 이래 봬도 대학 나온 사람이야'인데, 이 두 대사가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읽힌 모양이다.
나는 권 씨를 흉내 내서 '저 이래 봬도 박경리 문학상 수상 작가다'라고 얘기하고 싶다.
"
그는 박경리에 대해 "선생님 많이 그립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 봄에 '문신'이 완간되고 코로나 사태가 좀 잠잠해지고 제 건강도 좋아지면 집사람과 함께 통영으로 선생님 위패를 꼭 찾아뵙고 인사를 다시 드리겠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