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교수, 탄생 시리즈 마지막 3권 '국민의 탄생' 펴내
"3·1운동은 국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3·1운동은 국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당시에는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정신적 국민의 탄생을 말하죠. 즉 우리나라에서는 3·1운동 때 정신적 국민국가가 태어났던 겁니다.

"
사회학자 송호근(64) 포항공대 석좌교수의 '탄생' 시리즈 마지막 권인 '국민의 탄생-식민지 공론장의 구조 변동'(민음사)이 출간됐다.

'국민의 탄생'은 '인민의 탄생'(2011), '시민의 탄생'(2013)에 이어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기원을 찾아 떠났던 송 교수의 14년 여정을 마무리 짓는 책이다.

송 교수는 21일 전화통화에서 "사회학은 당시 발생하는 사회현상이나 갈등은 설명할 수 있지만, 본질은 건드리지 못하고 미래도 예측하지 못하는 점이 답답해 한국의 기원을 찾아 떠났다"고 길었던 여정의 출발 이유를 설명했다.

송 교수는 탄생 시리즈 1권인 '인민의 탄생'에서 무너지기 시작한 봉건 질서에서 권력의 객체인 인민이 걸어 나오는 과정을 다뤘고, 2년 뒤 '시민의 탄생'에서는 이런 인민이 존재론적 자각을 거쳐 근대적 시민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탐색했다.

그리고 이번 책에서는 조선의 인민이 근대적 개인과 시민을 거쳐 국가의 주체인 국민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1권을 낸 후 2권 출간까지는 2년이 걸렸지만, 그후 '국민의 탄생'이 나오기까지는 7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에 대해 송 교수는 "식민시대로 접어들자 조선의 역사와 제국주의의 역사가 뒤섞여 총제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 의식의 탄생 과정을 다루다 보니 하나로 모아내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송 교수는 이번 책에서 3·1운동을 "국민의 탄생을 확증하는 대사건"이라고 밝혔다.

책에 따르면 이 시기는 고종의 서거로 군주와 국가가 분리되고, 시민이 국가의 주체인 국민으로 호명된 때였다.

송 교수는 "당시 평민들에게는 '조선'이 '대한'보다, '인민과 민족'이 '시민과 국민'보다 더 익숙했다.

그런데 '인민'이 '시민'으로 진화한 징후는 뚜렷했고, '민족' 의식 내부에 단일 국가를 향한 정치적 형체가 무성하게 자라나 '국민'의 자격 요건을 갖춰 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에는 폭력적, 억압적이었던 식민통치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작은 공론장, 즉 매체(문예)와 종교의 공론장이 있었다.

송 교수는 "문예 공론장이 사회 저변에서 확산되는 무형의 실체였다면, 종교 공론장은 교리, 조직, 신자를 갖춘 유형의 존재였다"고 밝혔다.

이어 송 교수는 "국내에서 사회운동이 완전히 얼어붙고 결사체들이 해체된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해외 독립운동조직이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해외 독립운동조직은 중국, 일본, 미주에서 네트워크를 만들어 국내에 국민의 개념을 전달했다.

송 교수는 "이들 해외 독립운동조직과 대구를 중심으로 한 국내의 비밀결사체는 서로 왕래하면서 문예·종교 공론장에 국민이란 개념을 크게 확산시켰고, 드디어 국민의식이 3·1운동을 통해 터져 나왔다"고 설명했다.

"3·1운동에 나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혹여 본질적 차원의 국민 정체성은 형성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위에 나서기를 각오한 사람들, 우연히 시위에 휩쓸린 사람들의 인지 공간은 언제든지 국민 정체성으로 진화할 휘발성 있는 체험과 위협 요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 국민 정체성을 인화하는 역할은 운동의 전위에 나선 사람들, 운동 지도자들의 몫이었다.

공론장의 시민들은 3·1운동 시위에 가담하거나 단순히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국민'이 되었다.

1919년 봄, '국민의 탄생'이 그렇게 예고되고 있었다.

"(본문 308쪽)
송 교수의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기원 찾기 여정은 이제 끝난 것일까.

송 교수는 "이후 역사는 너무 복잡해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 한국의 국민이 어떤 경로를 걸어왔는지가 궁금하다"고 밝혔다.

408쪽. 2만8천원.
"3·1운동은 국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