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괴로 코로나19 유행, 희망을 주는 밝은 톤의 옷 만들고 싶어요" 미국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의 줄리안 허프, 드라마 '비벌리힐즈 90210'의 제시카 론지스, 그래미상을 받은 가수 케리 언더우드, 전설적인 슈퍼모델 카롤 알트, 영화배우 브리타니 스노우와 다나이 구리라, 리얼리티 TV쇼로 화제가 된 카다시안 패밀리, 드라마 '더 시티'의 휘트니 포트, NBC 방송 '투데이쇼' 앵커인 앤 커리…,
이들의 공통점은 패션디자이너 유나양(YUNAYANG·한국명 양정윤)이 디자인한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특히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이자 유명 현역 모델 메이 머스크는 2016년 '메트 갈라' 행사에서 그가 만든 의상을 입고 레드 카펫을 밟았다.
그의 이름을 딴 여성복 브랜드 'YUNAYANG'은 현재 전 세계 15개국 유명백화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프랑스의 패션기법에 현대식한 디자인을 가미한 고가의 여성복이다.
양 씨는 생존경쟁이 치열한 뉴욕컬렉션에서 2010년부터 봄과 가을에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사람들이 답답하고 우울하잖아요.
희망을 주는 밝은 톤의 옷을 만들고 싶어요.
"
코로나19를 피해 잠시 귀국한 양 씨는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올해 봄 컬렉션을 못 열었지만 올겨울 21번째로 꾸밀 계획인 컬렉션의 주제를 '코로나19'로 정할 생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패션디자이너가 뉴욕에서 10년 동안 매년 2차례씩 컬렉션을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은 대개 비슷한 인생 패턴을 밟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데뷔하고, 패션지로부터 조명을 받고,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의 상을 받고, 패션 전문 투자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회사를 키우고, 고급 백화점에 입점하고, 대기업 등에 브랜드를 팔고, 저가의 제품을 마트에 대량 판매해 돈을 번 다음 패션 산업계를 떠나는 수순입니다.
그래서 제가 컬렉션을 10년간 개최한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
뉴욕을 떠나 서울에서 재충전하고 있다는 그는 "그만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후원자들이 나서서 무대를 꾸밀 수 있도록 도왔다"며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10년을 더 패션을 선도할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서울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고도 했다.
"K-방역이 세계에 알려지고, 방탄소년단(BTS)도 세계를 장악하는 이때 서울에 있는 것 자체가 기회가 됐다"며 "서울에서도 컬렉션을 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가나 전철역, 시장 등을 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고, 특히 한옥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나양은 뉴욕에서도 콘셉트에 맞는 장소를 발굴해 패션쇼를 여는 디자이너다.
늘 익숙한 공간에서 여는 패션쇼에 싫증 난 관계자들은 그런 기발한 창의성에 열광했다고 한다.
그가 서울에서도 재미있는 곳을 찾는 이유다.
유나양은 그림을 감상한다든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가령 환경문제나 인종차별 등과 관련한 글이나 뉴스에서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서울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을 지켜보면서 감염증이라는 주제는 무겁지만 아름답게 입을 수 있는 조금은 특별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어학 연수차 이탈리아 밀라노에 간 그는 그곳에서 운명처럼 패션을 만났다.
명문 인스티튜트 마랑고니 디자인 코스를 수학했고,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이브닝드레스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패션 명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여성복을 전공하고, 실무경험을 쌓은 뒤 2010년 유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무대를 만들면서 뉴욕 패션 위크에 데뷔했다.
'약속된 승리자'라는 데뷔 평을 받은 그는 이후 뉴욕매거진의 '9인의 디자이너', 뉴욕 맨해튼 매거진 '라이징 스타 디자이너5', 모제 두바이 매거진 '주목해야 할 5인의 인터내셔널 디자이너' 등에 뽑혔고,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패션 일간지 '우먼스 웨어 데일리'(WWD)에 커버스토리로 소개됐다.
유나양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생산, 유통까지 전 과정에 관여한다.
20세기 폭스사, 조지 루커스 필름, 록 밴드인 씨빌 투와일라이트 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럭셔리 백화점들과도 협업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특히 2016년 이세탄 신주쿠 백화점에서 시세이도와 협업한 액세서리 컬렉션을 론칭했다.
한국인 디자이너로는 이 백화점에 처음으로 입점했다.
이듬해 오사카 한큐 백화점은 그를 '4인의 주목할 디자이너'로 뽑았고, 2017∼2019년 '벚꽃 시즌 한정판 컬렉션'을 그와 론칭했다.
이 또한 일본 디자이너가 아닌 해외 디자이너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부터 유럽 시장에 진출해 파리 패션위크 프레젠테이션 이후 전 세계 부호들의 휴양지인 스위스의 생모리츠와 모나코에 진출했다.
2년 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2층 매장에서 그는 사회적 기업과 협업해 내놓은 제품을 팔기도 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코로나19에도 30여 명의 직원에게 월급은 줄 수 있으니 행복한 일이죠. 남들 벌어먹이게 하는 패션디자이너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
그는 뉴욕에서 정상급 패션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숱한 역경을 견뎌야 했다.
"부모님은 세탁소 하시니"라고 재능을 깔보는가 하면 "너처럼 하면 단 한 벌도 못 팔거야", "넌 너무 이상한 애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 보면 창피한 디자인도 많아요.
그렇게 실수하면서 디자인을 계속해왔죠. 사실 지금도 부족하다고 느껴요.
그래선지 데뷔 이후 가장 만족한 컬렉션은 바로 앞에 열린 무대입니다.
"
뉴욕컬렉션을 20차례 열면서 디자인이 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고 고백하는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보다는 한국 토박이 디자이너로서 명품 브랜드를 많이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다.
또 "패션 역사에 남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궁극적인 포부를 품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