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검토 필요" 하루 만에 번복…충북도 자체 결정 권고도
"충북도·도의회 오락가락 행보가 갈등 키웠다" 비난 목소리

충북도의회가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철거 근거를 담은 조례안 심사를 재개한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하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충북도의회 전두환·노태우 동상 철거 조례 심사 또 보류
도의회 행정문화위원회는 16일 입장문을 내 "이번 임시회에서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을 상정하지 않고 법제처나 고문변호사를 통해 면밀한 법적 검토 후 심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허창원 도의회 대변인은 전날 출입 기자들과 만나 "이 조례안 관련 여론 수렴 토론회 결과를 토대로 행문위 소속 의원들이 논의 끝에 조례 심사 재개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조례안 심사 계획을 번복한 것이다.

행문위 측은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취지로 제정한 조례안이 법률 위반이나 도민갈등을 초래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숙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심사를 보류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조례안 상정과 별개로 충북도가 행정행위를 하면서 이 문제처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도민의 비판을 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과 잘못된 안내문이나 전시물을 즉시 교체할 것을 이시종 지사에게 권고하겠다"고 피력했다.

이는 논란이 되는 두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를 조례 제정과 무관하게 충북도의 행정 결정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의미를 해석된다.

또 지난 14일 열린 여론 수렴 토론회에서 윤자영 충북도 고문변호사가 "동상을 만든 것도 조례 없이 만들었기 때문에 관광진흥법에 위배만 되지 않는다면 전직 대통령 예우법과 무관하게 동상 철거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힌 의견과 일맥상통한다.

충북도의회 전두환·노태우 동상 철거 조례 심사 또 보류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 문제를 놓고 충북도와 도의회가 불필요한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충북도는 2015년 관광 활성화 목적으로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는 9명의 대통령 동상을 청남대에 세웠다.

이룰 두고 충북 5·18민중항쟁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 5월 "국민 휴양지에 군사 반란자의 동상을 두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 철거는 물론 대통령길 폐지를 요구했다.

충북도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막상 동상을 뜯어낼 근거가 애매했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전직 대통령은 경호·경비를 제외한 다른 예우를 받지 못한다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을 근거로 삼으려니 애초 동상을 세운 행위가 법을 어긴 꼴이 됐다.

일단 동상 설치와 전직 대통령 예우법과는 무관하다고 결론 내린 뒤, 동상 철거 근거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충북도에 도의회가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이상식(청주7) 의원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동상 건립, 기록화 제작·전시 등의 기념사업을 중단·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충북도의회 전두환·노태우 동상 철거 조례 심사 또 보류
하지만 이 조례안은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보수단체의 반발을 불렀고, 부담을 느낀 도의회는 여론 수렴을 핑계로 조례안 심사 보류를 반복하는 형국이 됐다.

결국 몇 달간 갈등만 키운 채 공이 돌고 돌아 충북도로 돌아온 셈이다.

최진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자치국장은 "도가 동상 철거 결정에 앞서 여론 수렴 절차만 제대로 거쳤어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충북도 관계자는 "현재 동상 철거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행문위 권고를 내부적으로 논의한 뒤 향후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청남대(남쪽의 청와대)는 제5공화국 시절인 1983년 건설됐다.

이후 역대 대통령의 여름 휴가 장소로 이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일반에 개방돼 관리권이 충북도로 넘어왔다.

충북도는 청남대에 역대 대통령의 동상·유품·사진·역사 기록화 등을 전시하고, 전두환(1.5㎞)·노태우(2㎞)·김영삼(1㎞)·김대중(2.5㎞)·노무현(1㎞)·이명박(3.1㎞) 대통령 길을 조성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