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원 범우연합 이사장이 경기도 화성의 GCL FARM에서 스마트팜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김명원 범우연합 이사장이 경기도 화성의 GCL FARM에서 스마트팜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에 GCL FARM이라는 수직형 식물공장 업체가 있다. 방청제 등을 만드는 범우화학을 비롯한 범우연합(이사장 김명원, 80)의 중앙연구소인 BIT범우연구소 바로 옆이다.

1만㎡규모의 대지에 연건평 3800㎡ 규모로 신축된 GCL FARM 안으로 들어서려면 방진복과 방진모를 쓰고 에어샤워를 해야 한다. 그 안에 들어서면 수경재비 플랜트에서 층마다 기능성 상추, 청경채, 케일, 로메인 등 다양한 채소(일부는 재배예정)가 자라고 있다. 커다란 도서관의 서가를 연상시키지만 이곳엔 층마다 책 대신 채소가 자리잡고 있다. 층마다 천장엔 LED등이 켜있고 파이프를 통해 물에 녹은 각종 양분이 식물의 뿌리로 전달된다.

약 200억원이 투입된 이 시설은 첨단 스마트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온도 습도 바람이 자동 제어되며 내부 모습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팜의 한 부류인 수직형 식물공장은 현존하는 농업 기술 중 가장 고도화된 시스템으로 미래농업의 대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설은 김명원 범우연합 이사장(80)의 오랜 구상 끝에 탄생한 것이다. 김 이사장은 범우연합의 설립자다. 서울 양재동에 본사를 둔 범우연합은 절삭유 압연유 방청유 코일코팅제 등 산업용 특수윤활유와 소비재인 WD-40, 친환경 과일·채소 세정제 베지아쿠아를 만드는 중견 그룹이다. 계열사를 포함해 국내 법인과 중국 베트남 미국 유럽 등 해외 법인 등 총 15개 법인을 두고 있다. 연간 매출액은 약 3500억원대에 이른다.

1940년 생인 김 이사장은 팔순에 스마트팜사업을 시작했지만 그의 먹거리에 대한 구상은 오래전부터 영글어왔다. 그는 “사람의 건강은 먹거리와 뗄레야 뗄수 없다”며 “안전한 먹거리, 깨끗한 먹거리에 대해 오래 관심을 가져왔는데 이를 실현한게 스마트팜”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팜은 단순한 식물재배 농장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청결한 무농약 먹거리를 재배하기 위한 청정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사명인 GCL은 그린(Green), 클린(Clean), 러브(Love)와 라이프(Life)를 의미하는 영어의 두문자로 사명 역시 김 이사장이 직접 지었다.

막연히 청정먹거리 사업을 구상해오던 김 이사장이 이 사업화를 구체화한 것은 3년전부터다. 임직원과 일본의 식물공장전시회는 물론 일본 톱5안에 드는 관련 업체들을 다니며 현장을 견학했다. 네덜란드 중국의 스마트팜을 방문해 상황을 파악했다. 충남대와 산학협력에도 나섰다. 스마트팜 관련 설비를 자체 개발하기 위해 전문가를 영입하고 준비했다. 공조시설과 금형을 발주하고 각종 제어장치를 자체 설계했다. 이런 노력 끝에 공장을 완공하고 지난 8월부터 파종을 시작했다. 이달초부터 다자란 야채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우선 품질이나 맛, 영양소 등 채소의 다양한 성분을 분석하고 검증할 것”이라며 “시중에 파는 것은 내년 상반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주로 겨냥하는 채소는 일반 야채가 아니다. 제약 원료나 화장품 원료 등으로 쓸 수 있는 기능성 채소다. 김 이사장은 이를 ‘약채(藥菜)’라고 부른다. 많은 돈을 투자해 단순 채소만 기르면 타산이 맞질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상추도 일반 상추가 아니라 안토시아닌 강화 상추, 저칼륨 상추를 중점 재배한다는 구상이다.

김 이사장은 “이를 토대로 기능성원료로 공급하고 스마트팜 관련 플랜트 수출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막이나 건조한 지역, 러시아같은 극냉지역에서는 신선채소를 재배하기 힘든데 이런 곳에 플랜트를 수출할 계획이다.

김 이사장은 범우연합(1973년 창업) 설립이전에 1970년 서울 충무로에서 사진인쇄업을 시작했다. 이로부터 따지면 올해로 사업 50년을 맞았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공부한뒤 한때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이내 방향을 사업으로 틀었다. 고등학생 시절 학생 대표로 만난 유일한 박사(유한양행 창업자이자 독립운동가)가 “자네는 훌륭한 기업인이 될 자질이 있으니 나중에 사업으로 보국하라”고 격려한 것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몇가지 원칙을 지켜왔다. 첫째, ‘인본경영’과 ‘사회공헌’이라는 사훈을 먼저 정하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유일한 박사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BIT범우연구소 마당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기념비에는 이 사훈이 새겨져 있다. 그는 1973년 범우화학 창립기념식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범우화학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기업으로, 유일한 선생의 기업정신을 본받아…’라는 내용이다. 인본주의의 핵심은 인간을 위한 경영이고 더불어 사는 경영이다. 그동안 장학재단을 만들어 155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본인과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외진 마을과 1사1촌 자매결연을 맺고 30년이상 이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벌이는 것을 물론 인근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국내 1사1촌의 효시격이라 볼 수 있다. 임직원을 가족처럼 대해 지난 50년간 경영상의 어려움이 닥쳐도 단 한 번도 감원하지 않았다. 노사분규도 없었다.

둘째, 기술력으로 승부거는 일이다. 그는 창업한 지 불과 2년 뒤 사내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지금도 전체 인원의 약 10%인 70명을 연구개발 부서에 배치해놓고 있다. 범우연합의 발명특허는 18건이지만 실제 개발한 기술은 100건이 훨씬 넘는다. 화학분야의 특성상 성분이 알려지면 복제할 수 있어 대부분 특허를 출원하지 않았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1000종이 넘는다. 이들 중 압연유 절삭유 방청유 등 몇몇 제품은 세계 3대 메이커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는 이번 스마트팜도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 작정이다.

김낙훈 한경글로벌강소기업연구원장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