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경력 필수, 스카이만 뽑힌다?…고민 깊어진 '경력법관제'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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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기간동안 법조 경력을 쌓아야 판사가 될 수 있는 '경력법관제'가 시행된 지 8년이 됐습니다. 판사로 임용되기 위해선 최소한의 법조 경력이 요구되는데 오는 2021년까지는 5년 이상, 2022~2025년 7년 이상, 그 이후부터는 10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합니다.
경력법관제는 2013년 '법조일원화' 정책에 따라 도입됐습니다. 검사, 변호사 등의 경력이 있는 법조인으로 법원을 채워 사법부-검찰-변호사로 이뤄진 법조계를 '일원화'하겠다는 뜻입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소위 '이념적인 판결'이나 '튀는 판결'을 막기 위해 경력법관제를 도입했습니다. 사회적 경험이 풍부하고 경륜을 갖춘 법조인이 법대에 앉으면 비교적 여기저기 덜 휘둘리고, 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취지에서였습니다. '너무 어려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을 판사로 앉힐 수 없다'는 국민 여론도 한몫했습니다.
이렇게 도입된 경력법관제에 대해 최근 법원 내부에서도 시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꼽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판사로 임용되기까지 필요한 법조경력 연수(年數) 재조정이 필요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경력법관으로 뽑은 판사들이 특정 대학, 특정 법무법인 출신으로 쏠려 있다는 우려입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경력 10년이면 보통 40대 초반의 나이에 법조인으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라며 "그간의 인맥 등을 다 버리고 인재들이 법관자리로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오히려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돌던 사람들만 법관으로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털어놓았습니다.
12년차 한 판사는 "판사들은 당장 눈 앞의 사건 고민만 하지 일반 직장인들처럼 조직의 미래나 발전방향에 대해서는 솔직히 깊게 고민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며 "법원이라는 곳은 결국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는 곳인데 그런 조직에 필요한 구성원이 어떤 사람일지 우리 차원에서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법원행정처도 이같은 우려를 모를리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 대응에 나섰습니다. 대법원은 지난 9월 '판사 임용을 위한 적정 법조재직연수에 관한 법률전문가 대상 인식조사'라는 이름으로 연구 용역을 의뢰했습니다. 해당 사업 제안요청서 문건에 따르면 대법원은 "법조일원화 제도 도입 이후 법원은 신규 법관 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합의부 구성, 전보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상치 못했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며 "법원조직법이 규정하는 원칙적인 법조재직연수(10년)의 적용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10년이라는 기간이 적정한 것인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고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법원 내부에선 국민들이 '재판의 효율성'이라는 가치와 '절차적 만족감'이라는 가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경력법관제는 기본적으로 판사들이 원했다기 보다는 국민 여론에 힘입은 정치권의 정책 추진으로 도입됐기 때문입니다.
14년차 한 판사는 "경력법관 도입 전에는 소위 '도제식' 교육으로 법관을 길러냈다"며 "경력법관은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배석으로 오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 쌓여있는 수많은 사건들을 논리에 따라 빠르게 법리를 적용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법원을 원한다면 어릴때부터 법원 시스템에 최적화된 상태로 법관을 길러내는 게 맞다"며 "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순 법리적용 외 판결이 미칠 영향, 절차적 타당성 등을 좀더 따지기 원한다면 경력법관 제도가 맞을 수 있다. 둘 중 하나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임용된 경력법관 669명 중 515명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졸업생이었습니다. 경력법관의 77% 가량이 소위 'SKY' 출신인 셈입니다.
또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력법관의 13.1%가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이었습니다. 10명 중 1명은 김앤장에서 온 셈입니다. 출신을 10대 대형 로펌까지 넓힐 경우 그 비율은 46.3%로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그런 부분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법관 선발이 블라인드 방식으로 투명하게 진행되다 보니 학교를 배려하는 조치는 현실적으로 취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며 "최선을 다해 법관의 의식과 사명에 대해 검증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쉽게 말해 SKY나 대형 로펌 출신만을 뽑으려고 한 게 아니라 투명한 절차를 거쳐 뽑고 보니 SKY·대형 로펌 출신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법원 내에서는 해당 문제를 '그닥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여론이 강했습니다. 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물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지만 SKY 출신 등이 많다는게 '그게 문젠가?' 하는 의견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서울대 나왔다고 판사로 뽑아준 게 아닌데 이 점 때문에 경력법관제가 문제라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당시 한나라당은 소위 '이념적인 판결'이나 '튀는 판결'을 막기 위해 경력법관제를 도입했습니다. 사회적 경험이 풍부하고 경륜을 갖춘 법조인이 법대에 앉으면 비교적 여기저기 덜 휘둘리고, 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취지에서였습니다. '너무 어려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을 판사로 앉힐 수 없다'는 국민 여론도 한몫했습니다.
이렇게 도입된 경력법관제에 대해 최근 법원 내부에서도 시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꼽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판사로 임용되기까지 필요한 법조경력 연수(年數) 재조정이 필요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경력법관으로 뽑은 판사들이 특정 대학, 특정 법무법인 출신으로 쏠려 있다는 우려입니다.
판사들 한 목소리로 "10년은 너무 길다"
어느 조직이든 우수한 인재를 뽑고 싶어합니다. 법원도 예외는 아닙니다. 문제는 판사가 되기까지 다른 법조 경력 10년이 필요하다고 할 때, 이미 검사 혹은 변호사로 자리잡은 우수 인재들이 과연 법원으로 올까에 대한 의문입니다. 당장 내후년부터는 7년의 경력이 필요합니다.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경력 10년이면 보통 40대 초반의 나이에 법조인으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라며 "그간의 인맥 등을 다 버리고 인재들이 법관자리로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오히려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돌던 사람들만 법관으로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털어놓았습니다.
12년차 한 판사는 "판사들은 당장 눈 앞의 사건 고민만 하지 일반 직장인들처럼 조직의 미래나 발전방향에 대해서는 솔직히 깊게 고민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며 "법원이라는 곳은 결국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는 곳인데 그런 조직에 필요한 구성원이 어떤 사람일지 우리 차원에서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법원행정처도 이같은 우려를 모를리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 대응에 나섰습니다. 대법원은 지난 9월 '판사 임용을 위한 적정 법조재직연수에 관한 법률전문가 대상 인식조사'라는 이름으로 연구 용역을 의뢰했습니다. 해당 사업 제안요청서 문건에 따르면 대법원은 "법조일원화 제도 도입 이후 법원은 신규 법관 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합의부 구성, 전보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상치 못했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며 "법원조직법이 규정하는 원칙적인 법조재직연수(10년)의 적용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10년이라는 기간이 적정한 것인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고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법원 내부에선 국민들이 '재판의 효율성'이라는 가치와 '절차적 만족감'이라는 가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경력법관제는 기본적으로 판사들이 원했다기 보다는 국민 여론에 힘입은 정치권의 정책 추진으로 도입됐기 때문입니다.
14년차 한 판사는 "경력법관 도입 전에는 소위 '도제식' 교육으로 법관을 길러냈다"며 "경력법관은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배석으로 오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 쌓여있는 수많은 사건들을 논리에 따라 빠르게 법리를 적용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법원을 원한다면 어릴때부터 법원 시스템에 최적화된 상태로 법관을 길러내는 게 맞다"며 "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순 법리적용 외 판결이 미칠 영향, 절차적 타당성 등을 좀더 따지기 원한다면 경력법관 제도가 맞을 수 있다. 둘 중 하나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력법관 77%가 'SKY' 출신
또다른 문제는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도 나왔듯이 경력법관으로 뽑힌 판사들 중 대부분이 특정 대학교나 특정 법무법인(로펌) 출신이라는 점입니다.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임용된 경력법관 669명 중 515명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졸업생이었습니다. 경력법관의 77% 가량이 소위 'SKY' 출신인 셈입니다.
또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력법관의 13.1%가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이었습니다. 10명 중 1명은 김앤장에서 온 셈입니다. 출신을 10대 대형 로펌까지 넓힐 경우 그 비율은 46.3%로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그런 부분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법관 선발이 블라인드 방식으로 투명하게 진행되다 보니 학교를 배려하는 조치는 현실적으로 취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며 "최선을 다해 법관의 의식과 사명에 대해 검증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쉽게 말해 SKY나 대형 로펌 출신만을 뽑으려고 한 게 아니라 투명한 절차를 거쳐 뽑고 보니 SKY·대형 로펌 출신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법원 내에서는 해당 문제를 '그닥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여론이 강했습니다. 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물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지만 SKY 출신 등이 많다는게 '그게 문젠가?' 하는 의견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서울대 나왔다고 판사로 뽑아준 게 아닌데 이 점 때문에 경력법관제가 문제라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